얼마 전에 올해 서른여섯이나 먹은 인기 있는 총각 가수 이현우 군이 요리책을 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름하여 '이현우의 싱글을 위한 이지쿠킹'이 그것이다.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다"는 말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요리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이보다 조금 앞서 흥미로운 시집 한 권이 나왔다. 시집 이름은 '40년 교직, 20년 자취, 거기서 얻은 비방(秘方), 먹을 거리 시집(詩集)'이라는 어깨제목과 '신세대 며느리에게 일러 주는 시아버지 입맛'이라는 부제가 붙은 '토속음식 만들기 119'다. 이 책은 강원도의 시조시인이며 수필가인 이흥우(李興雨·춘천 우석초교교장) 씨가 읊은 160여 시편을 묶은 시집이다.

요즘 시인들이 낸 수많은 시집 중에 이보다 특별한 시집은 없을 것 같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남자는 세 번 입맛을 바꾸면서 산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는 어머니 입맛으로 먹고, 결혼을 하게 되면 부인의 입맛에 맞추어야 하고, 마지막엔 며느리 입맛에 적응해야 했다"고 한다. 잠시 이 남자시인의 '토속음식 만들기 119'를 펼쳐 보자.

"열무는 무가 굵어지지 않은 것/ 잎이 싱싱하고, 한 뼘이 못되는 것/ 연한 것을 고르고/ 깨끗이 씻어서 소금 약간 뿌려 반시간 절인 후에/ 맛을 보아 짜거든/ 물을 부어 건져내어/ 고춧가루, 다진 마늘, 파 양념하여/ 가볍게 살살 버무리고…" '열무김치'라는 제목의 시 일부다. '묵나물 볶음'이란 시를 보자. "여러 가지 나물을 혼합하여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다시 삶고 불린 것이 묵나물이니/ 취나물, 고사리, 고비, 시래기가/ 대표적 묵나물일세/ 묵나물을 헹구고 짜서/ 들기름 넣고 볶은 참깨분 앙념하고/ 약한 불로 서서히 볶으면 되는 것."

얼른 골라낸 것이 이렇다. 이 시집엔 김치류, 야채나 산채, 콩, 어물과 해조류, 버섯 등을 재료 삼아 음식 만드는 법을 소상하게 읊어 놓고 있다. 3·4조 또는 4·4조를 기조(基調)로 약간의 변주(變奏)를 곁들여 재미있게 술(述)한 이 시들이 때론 웃음을 머금게 하고 또 때론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우리의 입맛을 옛날로 되돌려 놓는다.

이 시집에 들어 있는 시들은 단순한 시가 아니라 토종요리의 비방(秘方)이다. 마치 결(訣) 같다. 비결(秘訣)이라 할 때의 방술요법(方術要法)의 의미를 갖는 그 결 말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특별한 비법을 결 형식으로 지득(知得)하곤 했다. 예를 들면 풍수가(風水家)는 풍수 비법을 이런 식으로 익힌다.

"세강말속하야 풍수법이 일어나니/ 산론 진가(眞假)를 아녀대도(兒女大都) 의논하니/ 영웅호걸은 악독(嶽瀆)의 영기(靈氣)요/ 부귀영화는 산천의 발응(發應)이라/…/목욕방의 흔군사야 음란풍정 가이없다/ 병자봉(丙子峰)이 고수(高秀)하면 장원급제 어려울까…." 이 노래는 감여계(堪輿界)에서 유명한 '금낭가(金囊歌)'라는 가사(歌辭)다. 말하자면 '영웅호걸과 부귀영화는 산천의 영기로 발응하는데…지세가 치마가 걷혀 올라간 형국이면 그 지방에 음란한 풍기가 돌고, 병자방향에 솟은 산봉우리가 보이면 장원급제할 사람이 태어날 것'이란다. 이 '금낭가' 한 수를 외면 지관(地官)인양 행세할 수 있었다.

옛날에 친정 아버지나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아이의 치마 폭에 숨겨 준 이른바 '내방가사' 중 일부가 역시 가문의 품위를 잃지 않는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적은 운문(韻文)의 비결서였고, 한방(韓方)에서도 약제나 탕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술한 결이 있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태정태세 문단세…" 하고 조선왕 시호(諡號)를 외던 것과 비슷한 방식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결 형식의 시를 써 남겨야 할 만큼 지금 우리들의 입맛이 변했고 즐기는 음식 또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흥우 시인은 '대기업이 이끌어 가는 인스턴트 그리고 조미료의 맛' 천지인 이 세상의 음식에 저항하고 우리 전통의 것을 지키는 거의 처절한 심정으로 시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당연하게도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결 형식이어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에게 우리음식이 남아 있는가? 우리에게 문화가 있는가? 피자와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과 티지아이에 젖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이흥우 시인은 '음식문화의 119'가 되어 달려가는 중이다. 그의 작업이 눈물겹지 아니한가.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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