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처럼 개교기념일이라 초임지인 동해안을 다녀왔다. 그것도 평일이어서 어떤 묘미를 느끼면서 찾아간 곳은 근무 경력 삼분의 일을 보낸 동해안의 작은 어촌 대진이었다.

바다가 그리워 지난 69년 이곳으로 첫 발을 내 딛은 것이 인연이 돼 초·중등을 전보되어 유일하게 동생이며 형, 누나의 혈맥들을 두루 가르친 곳으로 언제 생각해도 고향처럼 포근하다.

광치령 재를 넘어, 진부령을 내려간다. 군인들이 전화를 걸어 통행을 시키던 비좁은 단일로가 엄청나게 드넓어지고, 폭설이 내려 오가도 못하던 곳이 4차선이 되어 변화를 실감했다.

바다에 당도해도 해가 남아 어둠이 몰려오지 않았지만 바다는 철저히 저녁 안개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 간 곳은 학원을 경영하는 제자였다. 초등 3학년 때 묵화를 잘 그려 칭찬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미술을 전공해 국전에서도 입상한 제자는 어찌나 겸손히 우리를 맞이하는지 마침 두 부부가 학원 설립인가를 내어 열심히 교육에 임하는 교육자로서 야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최윤철-. 애향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제자-. 고인이 된 아버지 뜻을 받들어 고향에 남아 십여년간 마을 경로잔치를 매년 열고, 고려대학원도 진학하여 향학열을 마구 뿜어대며 황무지에 장미꽃을 피우는 그 제자는 마지막 꿈이 대학교수란다.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두번째 찾아간 곳은 신학을 전공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귀향하여 고향집 등대 아래에 횟집을 차린 은숙 제자였다. 만나면 무엇하나 숨김없이 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낱낱이 고하는 제자는 불혹의 나이를 갓 넘어서고 있었다.

은숙이는 아직도 용암처럼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할 말도 못하고 참아내 기도원 같다고 한다. 언젠가 큰 목표가 이루어질테니 부디 건강하셔야 된다고 오히려 더 신신당부다. 그때 같이 배우던 동호, 항희, 승연이 안부도 물어 만남을 부탁했다.

마지막은 산학리 완석이네 집이었다. 너무나 궁금해 상전벽해가 된 과수원을 달려 비탈길을 돌아 올라갔다. 전혀 소문도 듣지 못하던 그곳엔 낯선 교회가 이름표를 달고 수줍어하지만, 손님 목소리에 달려나온 주인은 13년전 수심에 싸여있던 완석이 모친이 틀림 없었다.

예기치 않던 학생 시위에 거의 난치병 가까운 병을 얻어 학교 꽤나 달려오시며 눈물 뿌리던 부형께서는 완숙한 경지에서 신앙에 흠뻑 젖어 모든 것을 여유롭게 풀어나가고 계시는게 아닌가! 앨범을 보여준다. 쾌차하여 영국으로 유학간 제자 모습을 보니 어느새 모아두었던 한숨이 일시에 봇물터지듯 터진다.

오직 기도로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간구한 여인의 기도가 적중하여 완석이는 정상인으로 우뚝 서 있고 가정은 가정대로 축복을 받고 있었다.

모처럼의 기회는 그야말로 값진 추수지도였다. 평생 제자들의 활기찬 욕구에 박수를 보내며 앞길을 축하해주는 스승의 조언에 그들은 더욱 새로운 힘을 얻고 있었다.

이응철<수필가, 양구종합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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