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우

수필가(시조시인)
6·25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이다. 군대에 간 젊은이들이 편지를 보내오면 동네방네 편지를 들고 다녔다. 집에 있는 부모가 대개는 글을 몰라서 읽어달라고 들고 다니기도 했지만 편지가 왔다는 것은 자식이 살아있다는 증거니 자랑을 하고 싶어서다. 어떤 경우는 불행하게도 전사했다는 통보가 오게 되면 온 동네가 슬픔에 잠기곤 했다. 전사통보를 받은 아낙네나 아비어미는 혼절을 하기도 하고 얼마동안은 정신 나간 사람이 되곤 했다. 그런 어려움을 겪은 다음에 흔히 보이는 모습이 먼산바라기였다.

먼산바라기는 초점 잃은 눈으로 하염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이른다. 전사통보가 이미 왔건만 행여나 동구 밖 산모롱이로 남편이나 아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하릴없이 먼 산만 바라보는 것이다. 무의식의 상태가 되기도 했다가 문득 남편생각, 자식생각이 나면 눈물을 짜곤 했던 모습들이 지금도 선하기만하다. 먼산바라기는 삶의 초점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생각 밖에는 세상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생업도 포기했고, 식음까지도 포기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망각의 힘을 빌려 차츰 원기를 회복했다. 다시 찌들도록 일에 빠져 살면서 전쟁의 폐허를 쓸어내고 오늘의 풍요를 일궈냈고, 이제 그들은 고희를 넘기고 팔순을 헤아리는 노년의 세대가 되었다.

어느 회지에 실린 단체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먼산바라기들만 있었다. 초점을 잃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그럴까. 이 시대를 살면서 어느 시대보다 잘 먹고, 잘 입고, 맘껏 즐기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왜 시선은 초점을 잃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얼마 후 단체사진을 촬영하다가 풀렸다. 문학행사였다. 단체사진을 찍는다기에 나도 말석에 앉게 되었다. 사진사가 나섰다. 또 다른 사진사가 나선다. 잠깐 사이에 무려 일곱 명의 사진사가 앞에서 저마다 사진기를 들이댄다. 나는 순간 어디를 봐야 하느냐고 혼잣말처럼 물었다. 곁에 있던 젊은 어느 단체장이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단다. 내가 무슨 주책을 부린 것 같아서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예서제서 조명등이 밝혀지고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짧지만 혼란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카메라가 없어졌다. 사진 찍기가 끝난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또 먼산바라기 사진이 찍어졌다. 사공이 많으면 어떻다는 속담을 들추지 않아도 사진 속의 사람들이 초점 잃은 사진이 되는 과정은 확실하게 체험을 했다.

그러고 보니 먼산바라기를 만드는 요소들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이야기를 해도 좀처럼 들어주려고 하지 않고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소란을 떤다.

이 시대는 여러 가지 격랑의 시대이다. 크게는 정치, 경제, 정보, 부정과 부패의 격랑에서부터 개인적으로는 실직, 도산, 파산, 이별의 격랑 등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격랑을 겪어가며 살아간다. 그런 감당하기 힘겨운 격랑이 먼산바라기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이제는 각 분야에서 명료한 초점을 찾아야 한다. 정치 경제의 초점이 찾아져야하고 개인생활에서도 삶의 초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랄 것도 없이 정신을 가다듬어 나설 때와 나서지 않을 때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6·25 참화가 빚어낸 먼산바라기가 정신을 가다듬어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사실이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할 세대들의 삶의 초점으로 자리잡혀져야한다. 먼산바라기가 정신을 가다듬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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