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식

춘천석사감리교회 장로
근간에 와서 연예인들과 공직자들의 자살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오죽했으면 죽기까지 할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삶의 의욕이나 목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의 자살에 원인제공을 한 것으로 인터넷상의 엄청난 댓글들, 소위 악플들을 들 수 있다. 하루에 생산되는 악플의 양이나 저질성은 감히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악플의 본질은 사람에 대한 몰 이해요, 그 뿌리는 유물론적 사고다.

사람을 계량적 가치로 평가하고, 인간의 정신 현상을 물질적으로 비인격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예의나 죄책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고난의 피를 마시고 환란의 떡’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세상을 ‘고해’라고 했다. 고난의 떡과 눈물의 피를 마실 줄 알아야 고해를 건너 갈 수가 있다.

어느 청년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한쪽 팔이 잘렸다. 그는 장애를 얻은 자신을 원망해 결국 삶을 포기하기 위해 높은 언덕 낭떠러지로 올라간다. 그 때 산 중턱에서 양팔이 없는 사람이 온 몸을 비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저 사람은 양팔이 없으면서도 무엇이 좋아서 저렇게 춤을 추고 있을까. 의아하게 여긴 청년은 가까이 다가가 이유를 묻는다. 그가 대답하기를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몸이 간지럽지만 긁을 수 없어 몸을 흔드는 것이라며 당신 같이 한 손만 있어도 행복하겠다고 말한다. 청년은 깨달음을 얻고 내려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자살은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특성 차이는 영과 종교적 유무 차이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지만 고의적 자살이나 자살 원인 등을 제공해서는 안된다. 이는 최악의 무서운 범죄행위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특별한 존재이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원천적인 생명은 창조주 신이 주신 생명이기 때문에 나의 생명은 내 맘대로 다뤄서는 안된다.

이와 함께 자살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분명히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고 영적인 동물이므로 사후에도 죄의 값을 치르게 되어있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자살자도 자살의 원인제공자들도 중대한 범죄자들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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