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준

수필가
심 형! 고향을 떠나 가신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나갑니다. 오늘따라 빈자리가 휑하게 드러나 썰렁한 마음 걷잡을 수 없습니다. 지난여름 그토록 분주했던 시간을 보내고 만산홍엽(滿山紅葉)의 붉은 물결이 산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내려와 벌써 가을끝자락에 섰습니다.

산과 계곡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도심의 가로수와 동네 뒷동산은 곱게 단풍으로 물들어 버렸습니다. 도시의 스모그현상이 뿌옇게 물든 잿빛속의 행인들을 더욱더 창백한 얼굴로 만듭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한낮의 그 짧은 햇살만큼이나 사람들도 조급한 마음으로 저마다의 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군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쳇바퀴를 돌리듯 반복되는 관행적인 삶에 바쁘다는 핑계로 묵묵히 앞만 보고 살아갑니다. 그 와중에도 마음의 여유조차 없어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살아간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심 형! 지난해 8월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지금 전 세계가 금융위기에 처했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IMF 때를 방불케 한다며 각 언론사마다 난리법석입니다. 경제를 잘 모르는 서민들로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야할지 가슴만 답답합니다. 글쎄 정확한 수치는 잘 모르겠지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중 경제규모가 세계의 1위인 나라, 우리나라가 13위이라니 참으로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큰 미국이 아닙니까. 그것도 우리나라 1년 석유소비량이 미국의 하루 소비량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대국이 주택정책실정으로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니 이거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또 뭡니까. 이것은 분명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맹점들이 백일하에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세계는 글로벌리즘으로 이미 하나의 생활권으로 얽히고설켜 참으로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그래서인지 강박하도록 메말라 버린 세상살이 그렇지 않아도 사는데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난데없는 우울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번져 머리마저 멍합니다.

심 형! 혹자는 위기가 곧 기회라고도 하지요. 그래도 지구는 돌고 우리에겐 희망이 있답니다. 일상생활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제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만든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하루아침에야 추락하겠습니까? 오히려 학습을 통해 역경을 이겨내고 보완되어서 건강하고 성숙된 제도로 정착할 것입니다. 한 나라가 발전하는 데는 1인당 국민소득뿐만 아니라 1인당 지식수준도 높아야 합니다. 그리고 차세대는 두뇌개발사업인 지식산업이 세계를 지배한다지요. 지금 세계는 지식정보와 자본을 공유하는 글로벌사회입니다. 시장경제는 다국적 자본으로 소규모 시장에서 큰 시장으로 물방울이 빨려가듯 쉽게 뭉쳐갑니다. 지식정보는 고정관념을 넘어서 사고발상자체를 전혀 다르게 요구합니다. 틀에 박힌 기계적인 것보다는 창조적인 인간육성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사회는 전반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뤄야합니다. 그것만이 우리 모두의 살길이라 여겨집니다. 목전에 벌어진 세계적인 경제위기 우리 각자가 의연한 자세로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쁘게만 돌아가는 세상살이 차 한 잔 마실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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