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나니 어느새 나무들이 낙엽을 떨어뜨리고 앙상하니 산의 속살을 드러낸다. 그 틈새로 단풍나무는 제 본색을 뽐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화려하기보다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하다. 겉으로 봐서는 평온하기만 하다. 저 속에서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산을 향했다.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내 발에서 나는 부스럭 소리 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얼마 후 정적을 깨는 소리에 살펴보니 고라니, 청설모가 바쁘게 달아난다. 땅바닥에서는 멧새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찾으며 도란거리고 있다. 땅을 파보았다. 벌레들이 제집을 찾아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나무대로 여름에 무성했던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는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래도 떡갈나무는 여름 잎을 갈색이 되도록 비쩍 말려가지고는 이리저리 구기고 옹크려서는 제 겨울눈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썰매를 지치다 손이 시려 양손을 호호 불고 서있는 얼음판의 아이 모습이다.

풀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살펴봤다. 여름에 기세등등하니 누구라도 덤비라고 호기 있게 쭉쭉 자라던 억새가 마른 잎과 줄기에 흰 깃털을 달고는 하늘을 쓸며 마치 여름에 기고만장했던 교만을 용서라도 구하는 모습이다. 입동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여북했으면 겨울을 동장군이라고 추켜세워 주었을까. 이제 겨울로 접어드니 한 여름 사느라 애쓰던 삼라만상이 깊은 잠에 빠져 쉬려고 준비를 한다. 푹 쉬고서 우수 경칩이 지나 춘분쯤에야 큰 기지개를 펴고 청명에 가서는 모두 맑게 깨어나리라. 모두 쉬었다 살아난다는 희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많은 생명들이 제가끔 다른 요구를 해도 아우르며 다독여서 산 것들 모두가 어울리는 곳이 바로 산이다. 그러니까 산은 여러 생명이 다 함께 사는 곳이다. 풀과 나무는 물론 새며 벌레 짐승,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가 함께 산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그런 현상을 일찍이 깨닫고 다 사는 곳의 이름을 다 산다고 산이라 붙여준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동해를 다녀왔다. 크지 않은 포구였다. 산에서 시작된 물이 마을을 지나고 도시를 돌아 바다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산에서 보지 못하던 새로운 모습이 보였다. 산에서 떨어져 나온 산 부스러기들, 나뭇잎이며 가지와 뿌리들이 몸을 씻고 즐비하니 늘어져있고, 더러는 짐승이며 날아다니는 새들의 시체도 바다로 입장을 했다. 거기다 사람들이 쓰다버린 쓰레기들과 어느 꼬맹이가 먹다 던진 과자며 풋감 쪼가리며 분뇨덩이까지 유유히 입장하고 있었다. 바다는 말이 없다. 가끔은 큰 물결을 만들어 그 잡동사니들 받아들이기를 마치 거부라도 하는 듯이 내치기도 하고 후려갈기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 받아주고 말았다. 바다는 세상이 더럽다고 버린 것도, 어쩔 수 없어 흘러드는 것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 주었다. 아 그래서 바다로구나. 다 받아주어서 바다, 그 이름도 우리네 조상 누군가가 바다라고 지은 것이 분명했다. 강원도는 산과 바다의 땅이다. 다르게 말하면 누구도 살 수 있는 아량의 땅이고 누구도 다 받아주는 포용의 고장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 나라 제일의 땅이라고 해서 자화자찬이라는 비난의 소리를 듣지 않고도 하늘이 주신 땅으로서의 자부심쯤은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이 땅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인으로 역할이 좀 더 확실해야 하겠다.

산이 다 살게 해주고 바다가 다 받아준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내가 살고 나를 받아주었으니 이제는 남도 살고 남도 받아줄 수 있는 터전을 이미 안긴 나를 비롯한 우리의 아량으로 마련하고 다져나가야 하겠다. 눈길만 돌리면 모두가 자원인 강원도는 분명한 이 나라 마지막 보고임에 틀림이 없다. 이 땅의 산과 바다를 지키고 이용하는 일에 모두의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강원의 산 바다 연구소라도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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