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진하


이사온 날 밤, 빗소리를 듣는다.

야산에서 캐어온 화분의 청죽(靑竹)도 잎새를 뒤척이며

비에 젖는다.

비에 젖어도 푸른 잎새엔,

비의 지문이 남지 않을 것이다.

중년이,

중년의 이사가 무거운 건

이삿짐에 포개온 타인의 지문 때문일까.

오래 덮던 이불을 덮어도

잠자리가 설어 잠이 오지 않는다.

어디서 밤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뻐꾹, 뻐, 뻐꾹……

곁에서 뒤척이던 아내가 일러준다.

앞집 시계뻐꾸기예요.

딱, 열두 번을 울잖아요.

(열세 번은 아니고?)

고통과 불면의 시간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했던

중년의 이사,

밤새 뒤척이던 내 허망한 꿈자리 위로

문득 새벽을 알리는

뻐꾸기의 지문이 찍힌다. 이런!


·1953년 영월 태생, 감리교신학대학 졸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우주배꼽’등

·춘천 성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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