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식

춘천석사감리교회 장로
평화의 반대는 전쟁이다. 인간으로 인한 가장 무서운 재앙이 전쟁이다. 이 무서운 재앙이 바로 양심불감증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근간에 수치스러운 모든 보도들은 다 양심불량으로 인한 범죄결과이다.

외부 신체구조에서 머리가 가장 중요하듯이 정신적 구조에서는 양심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주를 축소한다면 사람 하나가 바로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인체 하나가 생존하는 데는 약 100조개의 세포 조직으로 신비한 조직세계를 이루고 있으며 엄청난 무한대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총 길이는 지구에서 달까지 약 220만번을 왕복 할 수 있으며 그 무게는 1g도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대장균 하나의 염색체 속엔 약 1만개의 유전인자가 있고 적어도 400만개이상의 DNA 염기쌍이 있는데 거기 담긴 정보의 총량은 대영백과사전 약 1억 페이지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반대로 정신적 영적가치로는 “온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가치는 양심과 영적 가치를 말한다. 육체적 가치야 말로 정가를 매길 수도 없을뿐더러 짐승의 몸값보다 더 나갈 것이 별로 없다고 본다.

그 가치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다면 양심 속에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양심에는 경찰청도, 검찰청도, 법원도 다 있어서 적법하게 역할기능을 가지고 통제하고 있다.

만약 최소한 양심의 도까지 타락한다면 사회는 곧바로 무법천지가 되고, 인간사회는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는 가끔 죄수들이 단체로 탈옥하여 인명살상, 방화, 파괴 등으로 무법천지를 만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양심이야 말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지만, 숨을 쉬는 공기처럼 가정과 공동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가는데 신성한 삶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유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관학교에서는 생도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평가는 양심불량이다.

다른 학점이 우수하다 하여도 양심불량죄가 적발되면 이는 자격박탈이 된다. 왜냐하면 장교는 국제적 신사로 그 품위와 인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양심불량자가 되면 장교의 품위와 인격에서 미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선량하게 사는 사람을 법 없어도 사는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므로 양심불량자가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정치도, 경제도, 학문도 모든 사회생활 전반에 불신이 쌓이고 신뢰성이 떨어져 저질적 국민으로 하락하여 우리는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는 것이다.

양심은 우리들 자신의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양심이 마비되면 마음이 캄캄해진다.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언제 어떤 일을 하게 될는지 위험속으로 걸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양심불량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범법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찰관은 속여도 양심은 속일 수가 없다. 양심은 우리들 자신에게 증인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이 양심불감증으로 인하여 발생된 모든 죄악은 현재에서도 그 죄값을 치르고 살아가게 되며, 사후에도 그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옛 선조들이 남긴 말에 사람이 좋은일하면 죽어도 좋은 곳에 간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좋은 일 한다는 것은 바로 양심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양심불감증에서 탈피하여 선량한 양심으로 살아가게 되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온 국민들, 모두 다 국제적 일류명품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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