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우

수필가
머루와 다래는 우리조상님 네들이 대대로 즐겨오던 산과일이었다. 1970년대 중반 화전정리 사업을 하기 이전의 우리 농촌은 많은 이들이 산비탈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어서 콩, 옥수수, 조를 심고 가꾸면서 부족한 농지를 보충하며 살아왔다. 도시민 상당수의 뿌리가 화전민인 셈이다. 이들에게 가을 간식거리 과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 머루와 다래였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을 즈음해서 산밭 귀퉁이에 남 먼저 붉게 물드는 머루덩굴은 아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다래 덩굴 밑, 풍성한 낙엽을 방석삼아 모여있는 다래 알들을 만나면 더 없는 행운이었다. 다래는 머루보다 귀하기도 했거니와, 달콤하기가 꿀 덩이와 견주어도 전연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급한 이는 다래가 익기도 전에 따다가 구박에 담아서 방에 두고 숙성을 시키기도 했지만 넝쿨에서 제대로 말랑하니 익은 다래 맛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이 귀하고 달콤한 다래가 우리의 토종 참 다래다. 왜 참 다래라고 하는가 하면 먹지 못하는 개다래와 쥐 다래가 있어서 그 못 먹는 다래와 구별도 하고, 맛이 참 맛이어서 참 다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과일가게에 가면 모양은 다래와 닮았는데 털이 숭숭 나고 커다랗고 흉측하기까지 한 모습을 한 다래가 참 다래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원래 십여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이름을 키위라고 했던 것을 누군가 참 다래라고 붙여준 모양이다. 토종 참 다래에게 양해 한번 구하지 않고 붙여준 이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귀화식물의 이름에 일찍부터 원산지 표시를 해왔다. 호두, 호밀, 양상추, 양파, 양배추가 그렇고 심지어 미국 쑥부쟁이는 나라이름까지 달아 이름을 하사했다. 생물학자들이 자신의 식견범위 안에서 최초 발견한 특산종이니 하면서 본의 아니게 동식물 이름을 붙여주어 우리조상들이 대대로 불러주던 이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생물들을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있다. 요즘 곤드레 밥으로 명성을 떨치는 곤드레의 이름은 고려엉겅퀴다.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붙여준 조선 엉겅퀴가 우리나라가 남북이 갈리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다시 고려엉겅퀴가 된 모양이다. 그 고려 엉겅퀴를 우리나라 어느 지방 누가 엉겅퀴로 불러주던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곤드레는 이 땅의 특산종이면서 제 이름은 그저 방언으로 만 남긴 채 엉뚱한 고려엉겅퀴로 살아가고 있다. 어디 고려엉겅퀴 밥집이 있나 말 좀 해보시라고, 긴 세월 불려오던 이름을 어느 날 갑자기 빼앗긴 ‘다래’가 뿔이 날 수밖에 없다. 멀쩡한 제 이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터줏대감 참 다래가 웬 털숭이 녀석에게 갑자기 이름을 빼앗겼으니 뿔이 나도 왕 뿔이 났다. 지금이라도 토종 다래에게 ‘참’자를 되돌려주고 키위에게는 양다래 또는 새 다래 정도로 이름을 바꾸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귀화식물의 원적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 생물에 대한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앞으로 많은 생물들이 국경을 넘고 대륙을 넘나들며 그 종을 펼쳐나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땅에서 살아갈 이름이 그 지역에 걸맞은 것으로 붙여지기를 바란다. 의도적으로 누가 지어주든 아니면 자연발생적으로 지어지든 한국에서의 최종적인 이름은 한국의 학자들 몫이다. 이들이 좀 더 국가와 지역 정서에 맞는 이름을 붙여주어야 하겠다.

그러고 보니 이름으로 뿔낼 동식물은 다래뿐이 아니다. 우리는 뿔나 있는 동식물들을 찾아내어 그 이름을 바르게 고쳐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달래주고 보듬어주어서 이 강산의 생물들이 아름답고 즐거운 산야에서 자리를 지켜 나가게 해주어야 하겠다. 국제적으로 학명을 고치는 일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면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국명만이라도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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