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철

천주교 춘천교구 사목국장
인간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개인 삶의 역사뿐 아니라 공동체나 국가, 민족도 역사 안에서 긴 기다림을 경험합니다. 기다림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합니다. 완성과 행복은 항상 인고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성경은 한마디로 기다림의 책입니다. 선택받은 백성들이 약속된 메시아(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린 삶의 기록이 성경입니다. 천지창조 때부터 시작된 이 기다림은 인간의 죄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어 당신이 약속하신 영원한 삶을 주시고자 하셨고, 그 약속은 오랜 기다림 끝에 인간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성경의 기다림을 전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대림(待臨)시기를 지냅니다. 성탄을 앞두고 지내는 4주간의 대림 시기는 그러기에 이미 오신 주님의 강생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하느님의 영원하신 성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탄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지 외적인 그 무엇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진정한 준비란 내적인 회개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정향(定向)하고, 그분이 오시는 진정한 의미를 살겠다는 실천적 결단입니다. 현실이 고단하고 힘들수록 이러한 결단이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바른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성탄의 추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성탄은 모든 이에게 기쁨의 축제이고 잔치였습니다. 흰 눈 내리는 성탄의 밤은 오히려 따뜻함이 가득했고,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빨간 옷의 산타 할아버지는 어른들에게조차 기다림의 대상이었습니다.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우리를 풍요롭게 했고, 누구든지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 기도하면 원하고 바라는 바가 모두 이루어질 것 같은 희망의 밤이기도 했습니다. 성탄절 성극 속에서 마구간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뵈었고, 별을 따라 일생을 헤매던 넷째 왕의 안타까운 전설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성탄의 추억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은총과 사랑의 체험입니다.

성탄이 다가오면 천주교 사제들은 매우 바쁩니다. 성탄 전에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고해성사를 청하는 많은 신자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밤이 늦도록 고해성사를 집전해야 하기에 피곤함도 느끼지만, 그러나 영적으로 맑은 상태에서 주님을 맞으려는 그들의 믿음에 힘을 얻습니다. 성탄이 항상 연말에 있음 또한 은총입니다. 일 년을 정리하며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시점에, 성탄의 빛은 우리 내면을 더욱 밝게 비추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참 의미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사랑의 축제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성탄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지내는 올바른 자세란 무엇보다도 사랑의 실천이어야 합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크듯, 우리가 성탄을 크게 기뻐할 때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느끼는 어려움 또한 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탄의 기쁨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나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인간 되어 오신 큰 뜻이 성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연말연시에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오시는 예수님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받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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