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시골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몹시 가물었다. 5월의 태양이 한껏 기승을 부려 식물은 물론이려니와 사람까지 지쳐 금방이라도 마음에 쩍쩍 금이 갈 판이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어르신께서 땀을 흘리시며 언덕진 우리 집까지 우정 오셨다. 웬일이시냐는 인사도 묻기 전 그분은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예언자 같은 말씀을 하셨다.

구릉에 얹혀진 집이라 늘 물 때문에 고생을 했다. 여러 달 전부터 지하수를 얻어볼 심산으로 우물 파는 업자며 그 비용이며 등등을 동네 여러 사람에게 묻고 다녔다. 평소 마을에서 지각이 있으신 분으로 존경받던 그분은 지금껏 아무 말씀 없으셨다가 그렇게 뜬금 없이 닥치신 것이다. 더위 때문에 무슨 착오를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그득 담은 내 얼굴을 힐끔 보시더니 자세한 설명을 시작하셨다.

우리나라는 어느 곳이나 몇 자만 파면 물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물은 심한 가뭄이 들면 곧 말라버린다. 그런 샘이나 우물은 그다지 요긴하지 않다.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 때 우물을 파야한다. 그래야 겉물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깊은 물줄기에 닿을 수 있다. 힘들긴 하지만 그렇게 얻은 우물은 평생 좋은 물을 공급한다고 한다.

여전히 천수답(天水畓)이 많다. 말 그대로 하늘 물만 기다리며 짓는 농사이다. 벌써 여러 해 우리나라의 경제와 정치 그리고 사회전반의 상태는 요즘 기상만큼이나 심한 가뭄이다. 겉모습에 심한 비틀림이 일어난 지 벌써 오래고, 이젠 마음을 지나쳐 영혼까지 메말라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늘만 바라보며 해갈을 소원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우물을 파야할 최적의 시기이다. 이럴 때 파놓은 우물은 우리 인생에 결코 마르지 않는 생명을 공급할 것이다. 넋 풀어놓고 누군가를 원망만 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우물을 파야 할 때다.

(이정배·춘천 온의감리교회 목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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