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창

춘천제자감리교회 담임목사

(춘천 연탄은행 대표)
성탄은 죄와 허물로 죽을 인류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의 사건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와 진리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추락하신 사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추락을 인생의 실패요 패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절망적인 추락을 하셨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셨고 비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가장 낮은 자의 삶을 사셨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낮은 자를 사랑하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그들을 하늘의 주인공으로 삼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추락은 슬픈 추락이 아니라 아름다운 추락이다. 모두가 더 높아지고 더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스스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하늘의 아름다운 영광을 이 땅에 낮은 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낮은 곳으로 추락하셨기 때문이다.

요즘 경기가 어렵고 불황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고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 화려한 조명 불빛 아래 밤새 스키 타는 사람들, 근사한 식탁위에서 품위 있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 격조 높은 카페에서 담소하는 사람들,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을 감상하며 박수치는 세련된 사람들.

우리가 부인하려고 해도 세상은 더 우월한 것,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향해 진보한다. 그런데 여기에 슬픔이 있다. 이런 좋은 것, 세련된 것, 아름다운 것을 소수의 가진 자들만이 누린다는 것이다. 화려한 옷, 달콤한 음식, 감동적인 문화와 예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일부 사람들만이 누린다는데 세상의 슬픔이 있고 안타까움이 있다.

성탄에 예수님이 온 세상의 기쁨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 생명, 기쁨, 행복을 혼자만 누리려고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추락하셨다. 하늘의 은혜와 사랑, 자유와 구원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추락하셨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품어서 모두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추락하셨다.

예수님의 추락은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약자들의 삶에 희망과 용기, 새로운 비전과 꿈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약자를 위한 사역이었다. 죄인, 문둥병자, 창녀, 소경, 어린이, 여인, 병자, 장애인들은 언제나 예수님 삶의 중심에 있었다. 세상은 약자를 말하지만 언제나 강자 중심으로 진보한다. 세상은 장애우를 말하지만 장애우를 귀찮아한다. 약자를 위한 배려도, 장애우를 위한 장치도 고려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오셔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셨다. 교회는 약자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약자를 끌어안고 치유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성탄에 하나님이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비루한 자리에서 태어나 빈곤하고 비천한 것에 거룩함과 고귀함을 드러내셨듯이 우리는 더 비워야 하고, 더 낮아져야 하고, 더 내려가야 하고, 더 가난해져야 한다. 그 추락하는 힘과 은혜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더 보듬어 안고 사랑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 사회적 약자와 진한 연대를 추구하지 않는 성탄절은 의미가 없다. 가난하고 비천한 자리가 하나님이 추락한 거룩한 자리임을 경험하는 절기가 성탄절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