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무식

춘천 석사감리교회 장로
창조주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상부상조의 자연법칙에 순응하고 살아가도록 창조하였다. 인체의 신체구조도 같은 원리이다. 쉬운 예로 신발 속에 들어있는 발이 생각하기를 나는 왜 매일 답답한 신발속에서 무거운 짐만지고 일만 해야 하는가. 눈,귀,입은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 맛있는 요리 등을 매일같이 보고 듣고 먹으면서 즐기며 사는데 나는 이 감옥같은 굴속에서 이게 뭐냐고 불평하면서 일체 누워서 잠만자고 있다면 이는 스스로 자멸 할 것이다.

사람의 신체구조도 각각 자기 기능을 협력함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조물주는 창조하였다. 이는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상식은 진리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상식에서 이루어진다. 코가 코감기든 것을 핑계로 숨쉬는 것을 중단한다면 이는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정과 기업도 사회도 국가도 똑 같은 법칙에서 공존하게 되어있다. 모든 조직 기관단체도 같은 원리이다. 자기 역할감당이 상대를 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존의 법칙이다. 정치도 같은 원리이다. 야당도 여당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협력하면 공존의 성공을 달성하게 된다. 다양한 직업과 직종도 서로가 협력하여야만 공존할 수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서로가 물고 먹으면 피차가 망한다. 네트워크란 그물망 조직상태가 아닌가. 세계 경제망도 마찬가지다. 근간에 일어난 세계 경제파탄의 원인을 분석해 보라. 미국의 욕심 경제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지 않는가. 서로 자기 희생과 양보로 협력하면 공생공존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너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 살고 나도 살자’다. 동화책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마을에 앉은뱅이와 소경이 구걸을 하면서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살고 있었다. 하루는 소경이 앉은뱅이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내가 너의 다리가 되고 너는 나의 눈이 된다면 우리는 시장과 동네를 다니면서 많은 돈을 벌수가 있다. 그리고 그 돈을 두 사람이 똑 같이 나눈다면 잘 살수가 있다”고 하니 승낙을 하고 소경은 앉은뱅이를 업고 앉은뱅이는 길을 안내하면서 구걸하였더니 상당한 소득이 늘어 두 사람은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업혀다니던 앉은뱅이가 욕심이 생겼다. 소경을 속이기 시작했다. 돈도 더많이 챙겼다.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었다. 결국 그는 비만증에 걸렸다. 반면 소경은 뚱보로 인하여 기운이 쇠약해지고 먹는 것도 부실하여 영양실조가 되어 중환자가 되고 앉은뱅이는 노숙자가 되고 말았다. 동화라기보다 우리들의 생활전반에서 생생한 교훈을 주고 있다. 가정과 공동체 생활을 떠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조직단체 기관에서 성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바란다면 상부상조는 필수다.

이명박 정부 일년이 지나가도록 너무나 시간만 낭비하였다. 원인분석도 필요 없다. 이는 서로가 협력은 고사하고 흠집을 찾아내어 부스럼만 만들어 걷지도 뛰지도 못하게 중환자로 만들어놓았다.

내 탓은 고사하고 서로가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이 못난 사람들이여 언제까지 이렇게만 나갈 것인가? 행복의 샘터는 우리가 파고 만들어야지 누가 만들어 주겠는가? 옛 선조들이 남긴 말을 어찌 잊어버렸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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