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우

전 동해시의장
“달빛에 처연히 조응된 매화/ 누구나 눈 속에 핀 매화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남녘엔 매화의 꽃망울이 한창 터져/ 봄소식을 전하고 있는데…(후략)”

묵사,유주현의 수필 중의 일부분이다 이렇게 백화(百花)중에 삭풍이 부는 눈 속에서도 봄기운을 제일먼저 우리들에게 알리는 꽃이 매화일 것이다.

매화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 소 교목으로 프루누스(prunus,mume)란 학명을 갖고 있으며 개화기는 2~3월로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식물이다. 꽃 명은 매화나무라고 하며 그 꽃이 매화(梅花)이고 열매를 매실(梅實)이라 한다. 매화는 5개의 꽃받침으로 이루어져있고 둥글며 달걀을 거꾸로 놓은 모양으로 흑·백매화와 홍매화로 구분되는데 매화의 향기는 꽃 중에 제일의향(香) 즉 매향이라 하여 그 향기를 깊이 마시면 오랫동안 향을 간직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용연향(龍延香) 침향(沈香) 사향(麝香)에 이어 제4의 향의 범주에 속해 그 깊이와 격조가 넘치는 매화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 한다. 매실을 말리면 오매(烏梅)라 하여 진해 설사 이질 등에 효험이 있고 매화차와 매실주도 품격 있는 건강식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매화는 꽃들이 없을 때 추위와 눈 속에서 도도히 피는 존귀한 꽃이다. 매화는 달빛 속에서 보는 월매도(月梅圖)가 제격이며 눈 속에 덮여있는 설매도(雪梅圖)는 한층 흥을 돋우어주며 안개 속의 연매도(嚥梅圖)는 멀리 떠난 여인을 연상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중국의 명나라 때 진계유가 세한삼우(歲寒三友)중에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학식과 덕행이 높은 군자에 비유하여 사군자(四君子)라 불렀다. 이렇게 매화는 세상의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고 지조를 지킨 상징으로 비유되어 중원에 애호의 대상이 되어 중국의 국화가 되었고, 한자 문화권에서 시서화(詩書畵)에 가장 많이 인용되었던 소재가 향수(鄕愁) 고결한 마음 기품 등의 꽃말을 갖고 있는 매화라고 한다.

꽃들을 9개 등급으로 분류한다면 매화는 백일홍과 더불어 단연 정1품으로 분류됨은 당연하다 할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사군자가 성행하여 조선조 시대에는 사대부가들의 격조 높은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유행의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운명하는 그날에도 매화나무에 물을 주라고 일렀다는 말은 얼마나 매화를 사랑하였는지 생각되어진다. 김시습 또한 아호를 매월당(梅月堂)이라 한 것만 보아도 그의 생활이 곧 매화이고 매화가 매월당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율곡 이이도 매화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늘 쓰는 벼루에 매화를 새겨놓고 학문을 닦았을까? 마침내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아끼며 가꾸던 율곡매(栗谷梅)가 전남장성(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와 함께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천연기념물이 된다고 하니 선조들의 매화사랑을 길이 새길 수 있어 반가움을 금치 못하겠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사대부가들이 집을 지을 때는 매화나무 대나무 소나무 목 백일홍 등을 반드시 심어 그 가문의 품격을 알렸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근거로 동해시에서는 시화(市花)로 정하고 있으며 시 문화원에서는 국내 최대의 매화벽화를 만들어 시화의 상징을 겨우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새삼스레 매화를 예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해시에서는 벚꽃 축제를 하고 있는데 같은 시기에 전남의 광양과 해남, 강원의 춘천, 양양 그리고 삼척의 매원리 등에서는 매화축제가 열리는 난센스가 연출되고 있지 않은가? 시민들의 심벌(시화, 시조, 시민의 노래)을 생활화 하여 주민들에게 향토 얼을 심어주는 일에 적극적일 때 정주의식과 애향심이 절로 생긴다는 말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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