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공기와 물 같은 존재, 부자가 되려면 금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따위의 요설로 되잖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써낸 일본인 로버트 기요사키 같은 인물에 별 관심이 없다. 신자유주의 돈 이데올로기에 미쳐 날뛰는 오늘의 이 요상한 세상이 불만스러운데 거기다가 요리조리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려드는 기요사키가 고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가 관심 갖게 된 인물은 기요사키가 아니라 요시카다.

기요사키가 아닌 요시카 피셔(Joschka Fischer)가 처음 의식의 안테나에 포착되고 관심의 그물망에 걸리게 된 데는 사실 전적으로 동갑나기라는 점 때문이었다. 홍순영 전 외무부 장관이 독일 제2차 아셈 외무장관회담에 참석한 장면이 뉴스에 나왔을 때 거기서 요시카를 처음 발견했다. 그 후 3차 아셈서울대회에 참석하여 청와대를 방문한 그가 독일 외무장관 입장에서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이미 인지(認知)돼 있는 인물이라 특별한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런데 이 요시카가 한 때 극좌파 조직원으로 폭력 행위에 가담했었다는 보도도 있었고, 곧 이어 이 혐의에서 벗어났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아, 이 인물이 22 살 연하의 네 번째 부인을 맞이하고 또 그녀와 결별할 것이란 소문이 퍼졌을 때 야릇한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요시카는 요컨대 필자에게 애증(愛憎)을 공유케 한 세계적 뉴스 메이커다. 적어도 그가 쓴 '나는 달린다'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의 달리기 철학과 체험을 솔직하게 적어 놓은, 원제목이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장거리 달리기'인 한국어판 '나는 달린다'를 읽고 그 때부터 필자는 요시카의 팬이 돼 달리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이 저급한 부화뇌동(附和雷同)은 무엇인가?' 또는 '도대체 이 재미 없는 달리기 짓을 왜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요시카가 달리기를 통해 무려 35 킬로그램을 줄였고, 지난 99년엔 뉴욕 마라톤 대회를 완주했다는 문장을 되새기며, 더 솔직하게는 뱃살의 부담감을 벗어나기 위해 필자는 참을성 있게 달리기를 계속했다.

요시카는 주장한다. 모름지기 달리기는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되는 자아 여행이라고, 112 킬로그램의 엄청난 비만의 몸을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몸으로 바꿨다고, '미친 달리기'가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 주었다고 기염이다. 지치고 늙어 가는 필자로선 이 어찌 솔깃한 얘기가 아니었겠나. 그리하여 요즘 드디어 조금씩 전일엔 느껴 보지 못했던 요시카적(的) 요상한 기쁨을 달리기에서 맛본다. 한밤 중엔 별 신새벽엔 바람과 함께 달리면서. 그러다 보니 최근 필자의 기분은 그야말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다.

'창세기' 3장 8절에 이런 말이 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한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서늘한 시간에 에덴 동산을 거닐었고 아담과 그의 부인이 이를 확인했다는 얘기다. 이 대목을 어느 재치 있는 목회자가 "하나님도 조깅했어요"라고 해석해 좌중을 즐겁게 웃겼다. 이런 일화도 떠올리면서 필자는 아침 저녁 달리기를 즐긴다. 한번 해 보고 싶지 아니한가? 달리기 운동을 일상화해 봄 직하지 아니한가?

과천시 공무원들에게 마라톤 바람이 불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런저런 달리기대회가 봄산에 진달래 피듯 여기저기서 벌어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모든 달리기대회에 참석할 수 없지만 뜻 있는 달리기대회에 참여해 생애의 상승을 느껴봄이 어떠한가. 마침 강원도민일보에서 주최하는 '강원도민달리기대회'가 '통일로 하나로'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도 상기하고 남북강원교류를 통해 통일의 물꼬가 강원도에서 트이기를 기대하며 여럿이 함께 달려 봄이 어떠한가. '나는 달린다.' 요시카처럼 달리고…. 아니다. 강원도민달리기대회에 참여해 황영조처럼 달릴 것이다.

李光埴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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