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완

법흥사 주지
보통의 사람들에게 잠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인 휴식의 시간일 뿐 아니라 체력을 축적할 수 있는 에너지의 공급이 잠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잠자지 않고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座不臥)를 실천하는 선승들에게 잠은 그야말로 수마(睡魔)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 특히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잠은 보약이며 달콤한 꿀맛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잠을 편안히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코 앞에 산적해 있는데 어찌 편히 잘 수 있단 말인가. 범인들은 현실의 문제에 초연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불면이 당장 내 문제로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미리 강구하는 것도 지혜로운 처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은 어떻게 주무셨을까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아알라바이 사당 곁에 계셨다. 한 겨울이어서 나무 잎은 모두 말라 떨어졌다. 핫타카 장자 아들은 성을 나와 밖에서 거닐다가 차츰 세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어젯밤에는 잘 주무셨나이까?”, “그렇다 동자야, 기분좋게 잤다”, “지금은 한창 추운 때라 만물이 모두 시들어 떨어졌나이다. 더구나 세존께서는 풀자리를 쓰시고 입으신 옷은 매우 얇나이다. 그러하온데 어떻게 잘 주무셨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동자야, 자세히 들으라. 나는 이제 네게 물으리니 생각대로 답하라. 만일 어떤 장자가 집을 굳게 단속해 바람이나 먼지가 없고, 방 안에는 짐승 가죽과 비단으로 된 침구가 있어 아무 불편이 없으며 미녀 넷이 있어 얼굴은 단정하고 낯은 도화같아 세상에 드물어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또 등불이 켜져 있다면 그 장자는 유쾌하게 잘 잘 수 있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좋은 침구가 있으면 유쾌히 잘 수 있겠나이다.”, “어떠냐 동자야, 그는 유쾌히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때때로 탐욕이 일어나면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잘 잘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에게 탐욕이 일어나면 잘 잘 수 없을 것이옵니다.”, “지금 내게는 그런 탐욕이 아주 다 해 남음이 없고 근본이 없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떠냐 동자야, 만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도 잘 잘 수 있겠는가? (중략) 그러므로 동자야, 나는 이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여래는 유쾌하게 잘 잘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증일아함경 제20권 성문품

이 경에 의하면 부처님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유쾌하게 잘 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인생의 제반 문제를 슬기롭게 푸는 방안도 실은 삼독심을 여의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입 실패, 취직 문제, 가정 경제 빈곤 등으로 낙담하거나 슬퍼할 일은 아닌 듯하다. 모든 해법은 우선 마음 다스리는 데 있다. 삼독심을 여의라 하는 것이 체념과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자기 노력을 부단히 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유쾌하게 잠자는 법을 익혀둘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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