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조 때 제작 불교 보급에 영향
조선 초 우리말 연구 귀중 자료… 한·중 판화교류사 연구 단초 제공

▲ 조선 세조 때(1455~1468) 목판본으로 제작된 간경도감판 변상도 판화.


   
조선시대의 인쇄문화는 고려시대의 인쇄문화를 이어받아 임진왜란 전까지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유지·발전하여 왔다.

고판화박물관에는 조선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목판본들을 소장하고 있어 서지학과 미술사 및 판화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연구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문헌정보학 및 미술사를 전공하는 석·박사과정의 연구자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박물관을 찾아 진지하게 목판본을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연구자들이 고판화박물관을 찾는 것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목판본 책 중에서 삽화가 등장하는 우수한 삽화본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장품 자료 중에는 7점이 강원도 유형문화재와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어 오대산 월정사, 강릉 오죽헌 다음으로 강원도에서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소장품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간경도감판 변상도다.

조선시대 최고의 목판본 책은 세조에 의해 설립된 간경도감에서 만든 판본을 꼽는다.

간경도감(刊經都監)은 조선 세조 때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던 기관으로 1461년(세조 7) 왕명으로 설치되어 1471년(성종 2)까지 존속하였다.

유명한 승려와 학자를 초빙하여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일이 주된 사업이었으며 불서를 구입하거나 수집하고, 왕실 불사와 법회를 관장하기도 하였다.

불경 발간은 한문본 발간과 한글 번역본 발간의 두 종류로 나뉘었으며, 한문본은 특히 고려 때 조성된《속장경》을 판각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고, 신미·수미·홍준 등의 승려와 황수신·김수온·한계희 등의 학자가 실무를 맡았다.

이 때 만들어진 경전은 불교 보급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고 특히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의 우리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간경도감 본은 지금도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목판본으로 꼽히고 있다.

고판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간경도감판 삽화는 경전 앞을 장식하는 변상도 2장으로 중국 명나라 판본을 줄여서 복각한 작품으로 조선 초기 유명한 각수인 홍개미치에 의해 판각된 아름다운 변상도이다.

이 판본의 원본인 명나라 변상도 판본도 고판화박물관 소장되어 있어 한·중 판화교류사 연구의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이 변상도는 서지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경북대학교 남권희교수님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이었으나 교수님께서 흔쾌히 고판화박물관에 기증하여 많은 관람객들에게 조선초기의 판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한 유물이다.

박물관의 발전은 유물의 수집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물의 수집은 박물관 자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국내외 많은 박물관들이 수집가들의 유물기증을 유도해 아낌없이 유물을 기증하는 좋은 선례들이 간간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이러한 좋은 선례가 사립박물관까지 확대되어 나아갈 때 우리 문화의 수준이 한층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남교수님의 간경도감판 변상도 기증의 사례가 많은 사립박물관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판본은 법화경 판화중 가장 많은 종류인 영산회상도(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한 모습)가 권수판화로 새겨진 것이다.

변상도를 상세히 살펴보면 석가모니부처님 앞에서 사리불존자가 예배하고 있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으며 좌우로 8보살상과 왕과 왕비의 모습을 한 도상과 가섭과 아난존자를 포함한 10대 제자들과 신중들과 홀을 들고있는 신하와 합장하고 있는 궁녀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변상도의 상층부에는 보개와 보수를 비롯하여 비래하는 시방제불의 모습이 구름문양과 함께 표현되고 있으며 석가모니불의 수인(手印:손의 모습)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불보살들이 취하는 수인(手印) 중의 하나로 모든 악마를 굴복시킨 모습으로 손모양은 결가부좌한 채 선정인(禪定印)에서 오른손을 풀어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 끝을 가볍게 땅에 댄 것이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은 선정인 그대로 표현된 손의 모습이다.

부처님이 옷을 입은 모습은 문양이 아름답게 표현된 가사를 우견편단(右肩偏袒: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법의를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걸치는 방식)으로 착의되어 있다.

광배는 거신광(擧身光)안에 다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묘사하고 연화당초문으로 판각되어있는 모습이다.

위의 사진자료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간경도감판 변상도는 명나라 판본을 조금 줄여 그린 다음 충실히 복각한 판화임을 알 수 있으며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 명본에서는 변상도 왼쪽 끝에 위패가 있으나, 조선 간경도감판에는 구름과 꽃문양이 대신하고 있는 점이며, 명 판본은 병풍을 접는 방식인 접철본 형태로 되어 있으나 간경도감판은 선장본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한지로 만든 책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판본에서는 법화경에 주로 쓰이고 있으나 명본은 화엄경의 권수판화로 채용된 점도 특이하다.

글 : 한선학 박물관장
· 1956년 경북 청송 출생
· 서울사대부고·동국대 불교미술학과 졸업, 한양대 대학원 박물관교육학과 박사과정 수료
· 양양 낙산사에서 출가해 군승으로 국방부 법당 원광사주지를 역임하는 등 15 년간 군 포교 활동
· 1998년 전역해 치악산명주사 창건, 2004년 국내 유일의 고판화박물관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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