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꽃이 만발하고/ 마실가는 가시내들의 젖가슴이 부풀어/ 이 땅위에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칠 것이다.’ 사평역으로 유명한 곽재구 시인의 봄이라는 작품 중 나오는 구절이다. 봄의 깊어가는 풍경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으랴. 아마도 봄은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치는 계절이기에 가슴이 뛰고 볼이 발그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면서 기지개 켜고/ 앙상하던 가지들이 몸을 떨면서/ 긴 겨울을 살아 냈음을 축복했지요.’ 유자효 시인의 봄의 찬가 중 일부이다. ‘봄이다/ 쭈그러져 있던 씨앗들이 풍선들이 부풀어 올라/ 상추가 되고 동백이 되고 진달래가 된다/ 봄은 부푸는 계절/ 내 가슴으로도 뜨거운 입김이 쏟아져/ 나는 괜스레 홍조를 띠고/ 바람든 소녀들은 붕붕떠서 하늘로 날아 가려고 하고…’ 이대흠의 대폭발 이후 우주의 모든 것은 풍선이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그래서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아마도 봄은 이 시들에 언급된, 가시내나 소녀들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부풀고 볼이 발그레 해지고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산으로 들로 물가로 향해 지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봄의 어원이 ‘보다’라는 뜻에서 출발 했는지 모른다. 영어로는 봄을 스프링이라고 하는데 그 뜻 또한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만물이 생동하며 튀어 오를듯한 계절, 그것이 바로 봄이기에 봄은 어쩔 수 없는 계절의 여왕인 것이다. ‘꽃이 핀다/ 목련은 몸살을 앓는다/ 기침할 때마다/ 가지 끝 입 부르튼 꽃봉오리/ 팍, 팍 터진다… 떨림이 없었다면/ 꽃은 피지 않았을 것이다/ 떨림이 없었다면/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한 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 시든 사랑 앞에서/ 툭,툭 나락으로 떨어진다’ 박후기 시인의 꽃기침 1연과 3연을 옮겨 적은 것이다.
목련이 피고 질 때 기침을 하고 떨림이 없었다면 꽃도 피지 않고 봄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속절없이 봄바람에 마음 흔들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김남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