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성

춘천중앙감리교회 부목사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건강하게 살까, 어떻게 살아남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성공할까’하는 목마름 가운데서 몸부림치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다면 미움, 배신, 염려, 거짓도 부끄럽지가 않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삶에는 글 한 줄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의 눈물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만 살아가면 만족함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외롭게 된다.

전 세계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있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까지도 생일 파티에 마릴린 먼로가 와서 노래를 불렀을 때 “나는 이제 정치를 그만 두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후에 이런 유서를 남기고 침대 위에서 인생을 끝냈다.

“나는 돈, 미모, 매력 그리고 인기를 다 가지고 있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텐데 왜 이렇게 고독하고 슬플까?”

이렇듯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대면하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기게 된다.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이미 한 사람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였던 톨스토이다. 톨스토이는 10살 이전에 부모가 다 돌아가셨고 전쟁을 겪으며 어려운 가난과 질곡의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글을 쓰게 됐다. 그리고서 결국에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들의 착각일 뿐 진실로 인간은 오직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인도 캘커타에 마더 테레사의 ‘죽어가는 자를 위한 집’이 있다.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낮은 지붕에 비좁고 불빛도 희미한 예배당에 데려가서 보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이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사람은 누구나 죽어갈 때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에서는 매일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죽어가는 사람들만 이 곳에 수용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 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게 되면 그들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죽음의 집이 아니라 소생의 집으로 개조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집이 생명의 집, 희망의 집으로 변한 것이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그 안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기 때문이다.

요즘 경제 위기로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말들이 많이 들린다. 우리는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각계의 전문가들이 여러 대안들을 이야기한다. 그 모든 것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만약 그 곳에 사랑이 없다면 다시 밑빠진 독에 온 국민이 힘을 다해 물을 길어서 넣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랑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목사인 나는 예수님에게 배운다. 예수님의 사랑은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러면 함께 살게 된다.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힘든 때이다. 서로 외면하지 말고 서로 안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된다. 마더테레사님의 “모든 일은 기도에서 시작된다”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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