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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주재 취재부장
그동안 낙후의 대명사로 육지 속 고도(孤島)의 불명예를 안아 온 양구가 춘천방향 국도 46호선의 직선화를 비롯해 강원외고 유치, 친환경 농공단지 조성 추진 등 올 들어 개청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지역발전의 일대 전기를 맞아 꿈틀거리는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양구 금융권에 암운(暗雲)이 드리워져 각종 대형개발사업이 혹여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암운의 진원지는 합병권고를 받은 해안면의 대암농협. 대암농협은 펀치볼로 유명한 최북단 민통선 마을인 해안면의 유일한 금융기관으로 조합원들뿐 아니라 주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대암농협은 합병권고 이후 강원농협본부의 특별감사를 받는 등 합병에 따른 제반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대암농협의 합병권고, ‘굴욕’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해답이 지난 23일 양구경찰서로부터 날아 들어왔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 농협 전무를 지낸 인사는 친척들 명의로 공시지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12억여원을 부당대출케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직원 8명은 업무상배임죄 등으로 불구속 입건되는 등 대암농협의 부실대출 사태는 인구 2만의 자그마한 지역사회에서 큰 금융사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건화되기 전 그동안 대암농협 위기설은 부실대출로 좁혀져 왔었다. 주민들과 조합원들은 설마설마하며 가슴을 졸여왔지만 막상 사실로 백일하에 드러나자 직원들의 도덕성과 방만한 경영부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급속도로 냉각됐다.

특히 양구지역에서는 양구축협이 파산돼 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터이기에 후폭풍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대세다. 금융권이 한차례 무너져 쓰디쓴 아픈 경험을 한 주민들은 이번 대암농협의 합병권고에 따른 독립적 지위를 잃게 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욱이 향후 진행절차에 있어 조합원은 합병작업에 찬반의견 수렴과 이해관계에 따른 복잡성으로 갈등도 우려된다. 각종 개발호재로 지역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 터져나온 대암농협 합병권고는 이같은 폭발성이 큰 뇌관을 갖고 있기에 주민들의 시선은 따갑다. 농협의 본래 목적인 농업생산력 증진과 이를 통한 조합원들의 경제적·사회적 향상을 위한 진정한 농협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다. 물론 대암농협이 합병권고를 극복할 수도 있다.

일부 지역농협의 경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상여금 반납 등 자구노력에 힘쓴 결과 자기자본비율(BIS)을 늘려 자립경영 기반확대로 합병권고의 굴욕을 극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금융감독원의 경영실태 평가는 금융기관의 자본적정성·자산건전성·수익성·유동성 평가로 요약된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신동력사업 발굴과 예수금 확대 등 건전한 농협으로 새롭게 태어날 경우 분위기 반전의 기회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대암농협이 그 이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니면 인수합병 농협이름의 지소로 전락할 지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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