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고 21일은 두 사람이 하나 되었다는 부부의 날. 두 사람이 만나 식구가 되고 가족을 만들어 간다.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란 서로 관심(關心)과 배려(配慮)로 관계(關係)를 맺고 있는 인간의 삶의 구조적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마음이 끌려 이리 저리 마음을 쓰며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 관계가 바로 식구요, 가족이란 의미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의무와 책임이 수반되지만 그 외 친 인척관계에서는 윤리와 도덕으로서 관계를 이어간다고 봐도 되지 않겠는가 싶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의무와 책임이란 상하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좌우 수평적 관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관심과 배려로 보아야 할 것이다. 효(孝)의 근본을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사랑하는 모든 것, 자식들이 부모님을 정신적으로 편안하게 해드리고(양지의효), 육체적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해드리는(양구체 효)것이라고 하면 부모 자식은 서로가 관계와 배려로서 윤리와 도덕을 창출해 내는 보완적인 관계가 아닌가 싶어진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교육시키며 돌보는 일이 자식에 대한 효이고, 자식이 부모의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으로 관심과 배려로 베푸는 일이 효라고 한다면 부모와 자식 간의 효는 분명히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은 환경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 있어도 사랑하는 행위는 결코 달라질 수 없으며, 자식이 부모를 섬김에 주거환경이나 음식, 의복 따위는 다소 달라질 수 있어도 은혜를 기리는 정성은 결코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근본이며 효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효는(사랑과 정성) 부모와 자식 간의 삶에 의무이며 책임으로 관계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라도 서로가 더 배려하는 정성을 보이는 노력이 클수록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배가 될 것이다. 지난 5월 8일 어느 신문에 “이토록 잘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지금부터는 저희 걱정은 마시고 부모님만을 위해 사십시오” 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은 말이고 “엄마 아빠는 그것도 몰라요, 정말 안 통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고 했다. 핵가족 사회, 노령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효를 들춰내는 것이 대접 받아야 한다는 소리로 들릴까 다소 겸연쩍은 생각도 해 보지만 인간의 삶의 근간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한번 짚어본다.

나는 젊어서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으니 이제는 대접을 받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자녀, 내 이웃 그리고 누구에도 좋게 뵈는 늙은이로 살아 남기 위해 옛 친구 만나면 술 한 잔 사 주고, 불쌍한 이웃 보면 있는 대로 베풀고, 손자 손녀 보면 용돈 한 잎 줄 돈일랑 죽기 전까지는 갖고 있으라는 충고를 뇌이며, 미운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같은 군소릴랑 하지 말고,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아는 척, 어수룩하게 살아가야 늙은이로 대접 받을 수 있다고. 김학선·춘천시 효자2동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