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휴가냈다고 딸과 사위네가 온다는 소식에 반갑기도 했지만 많은 비가 올 것 같아 아내가 그렇게도 오지말고 집에서 쉬라고 말렸는데…”

시간당 70㎜의 폭우가 내리는 등 한 밤중동안 301㎜의 큰비가 내린 홍천군 두촌면 자은3리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구사일생한 朴기남씨(61)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22일 오후 늦게 도착한 딸 朴정옥씨(27·여)와 저녁을 함께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는 朴씨는 그 이후로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급류가 덮치기 직전의 상황에 대해 朴씨는“23일 새벽 12시쯤 부터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깜깜하기 까지해 아무것도 분간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아내와 마루에 나와 있었고 딸아이와 사위는 방안에 있었다”며 “물이 생각보다 급격히 불어나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질 틈도 없이 아내가 손녀를 꼭 끌어 안은채 아이구 하는 소리와 함께 급류에 휩쓸려 내려간듯하다”고 설명했다.

또 朴씨는 “아무생각도 나질 않았다 순식간에 물이 덮쳐와 휩쓸여가는 상황에서도 그저 나뭇가지라도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방송을 통해 홍천군 두촌면 일대에 수마가 덮쳐 가옥이 파손되고 실종자가 발생했다는 비보를 접한 친척들은 전화 등 통신마져 두절돼 설마하는 마음으로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서 속속 수해 현장에 도착했으나 교량이 끊겨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발발 굴렀다.

오후 1시30분쯤 비 줄기가 점차 가늘어지자 출동한 구조용 구급헬기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속속 구조되면서 언니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던 金길례씨(57·여·경기도 남양주시)는 언니 朴옥녀씨(82·여)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아버지 박기남씨 외에는 어머니와 동생, 조카 등의 생사를 몰라 끊긴 교량 건너편의 참혹한 마을 만을 바라보며 애를 태우던 장남 朴시권씨(31·서울)는 급한 마음에 소방공무원의 도움으로 로프를 타고 급류를 헤쳐 마을로 향했으나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자신의 生家를 발견하고는 망연자실에 빠져 주변을 또 한 번 숙연케했다.

◇…한밤중에 차오른 강물로 허리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집을 빠져나와 이웃집으로 피신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咸복례씨(69)는 “도무지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혼자 살고 있던 朴옥녀 할머니와 두 손 꼭잡고 죽기살기로 빠져나 올 당시에는 주변이 아무것도 없는 듯 했다”고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또 이날 수해피해를 당해 이웃주민 20여명의 임시 대피소가 된 李명우씨는“40여년 동안 평생 이 마을에 살면서 이렇게 가옥을 휩쓸어 버리는 폭우는 처음 겪어본다”고 말했다.

李在鉉 akcob@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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