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전투 당시 미 해병 1사단 소속 19명의 병사들은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는 정찰임무를 띠고 적진으로 향했다. 백인병사 12명, 흑인병사 3명, 히스패닉계 병사 2명, 동양계 병사 1명, 북미 원주민인 인디언 병사 1명으로 구성된 정찰조 분대원들은 하지만 퇴로확보 중 전원 전사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참혹한 전투로 기록된 전장에서 이들은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혹한을 이기지 못하고 장렬히 숨진 것이다. 그후 45년이 흐른 1995년 7월 17일 장진호전투의 돌아오지 않는 미 해병 19명은 영원히 부활했다. 미 정부가 이들을 잊지않고 수도 워싱턴 DC 포토맥 강변 옆 링컨기념관이 보이는 내셔날 몰(NATIONAL MALL)에 한국전 기념공원을 만들고 영웅 19명의 동상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미 대통령은 매년 1월 4일 장진호전투 생존자들과 함께 동상을 찾아 미 해병을 추모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 16일 아침 찾았던 워싱턴 DC 한국전 기념공원의 장진호전투 영웅들 앞에는 한다발의 꽃과 함께 ‘영원히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NEVER FORGET)는 리본이 강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경계와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은 6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생생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기자를 안내했던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미 정부는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미 태평양 함대소속 한 이지스함을 ‘장진호’(Chosin)로 명명했다고 전해줬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은 3년동안 62만8800여명의 전사자 등 모두 20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공원내 검은 대리석에 음각된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삼 크게 가슴으로 울려왔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9%가 6·25 전쟁 발발연도를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전쟁인 것이다. 하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워싱턴 DC 한국전 기념공원은 해마다 평균 320만명이 찾는다. 미국 등 참전국은 자유를 지켰고, 근대화와 민주화라는 기적의 역사를 있게 한 한국전쟁을 세월을 뛰어넘어 생생히 기억하고,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추억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만 잊고 있는 것이다. 6·25전쟁 59주년을 맞아 장진호전투 영웅들을 추모하는 한국전 기념공원의 글귀를 다시 되새겨 본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라를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