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백운

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이 세상 모든 것은 각기 다른 모양과 개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피부색이 다르고 체형과 인상과 성품도 다르다. 저 산야(山野)에 존재하는 모든 초목 또한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로 존재하고 있다. 다양한 개체적 존재가 각기 다른 모습과 개성으로 한데 어울려 이 세상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하나로 어울려 조화와 화합을 바탕으로 상의상관적(相依相關的)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하여 이 세계를 법계(法界)라고 부르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의 다양함과 개성을 말함에 있어 인간의 마음과 생각처럼 차별적이고 개성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라 하더라도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부모와 자녀의 생각이, 형제 자매간의 생각이 다르다함은 곧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정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사는 사람마저도 각기 다른 마음과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각자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인생을 차별적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의 형태와 양식을 드러내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마음의 다양성에 대해 ‘증일아함경’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은 물의 흐름과 같이 그 성질이 같지 않고 바라는 것이 각기 다르며 생각도 하나가 아니다. 내가 한량없는 세월동안 살펴보았지만 생각이 같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이 세상 중생들은 영원하지 못한 것을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즐거움이 아닌 것을 즐거움이라 생각하며 ‘나’가 없는데 ‘나’가 있다고 생각하며 깨끗하지 못한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바른 것을 오히려 삿되다고 생각하며 악한 것을 오히려 복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으로 보아 중생들의 근기를 헤아리기 어렵고 그 성품과 행동이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느니라.”

마음은 곧 세상을 믿는 창문이요,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 마음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관점의 시각을 우리는 견해라는 말로 표현한다. 견해는 사물과 세상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관점과 시각을 말함인데 이는 또 다른 표현으로 가치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질적 이익에 가치의 우선을 두고 흑백논리와 극단적 사고의 팽배, 종교적, 이념적 편견에 의해 불신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 지금과 같은 혼란한 시대 상황에서 과연 이를 극복해 낼 수 있는 바른 견해와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새로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견해와 가치관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릇된 삶을 살게 한다. 그릇된 삶이란 곧 탐욕, 집착, 소유를 좇아 사는 어리석은 중생의 삶일 것이다.

중생의 삶은 나와 남을 함께 불행하게 만드는 삶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가 바른 견해와 가치를 좇아 산다면 우리 모두는 평화롭고 행복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릇된 사견을 버리고 바른 정견을 갖춤은 바로 그러한 삶의 첫 출발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정견(正見), 또는 불교적 가치 그것은 연기법(緣起法)이라 할 수 있다. 연기법에 대한 다른 관찰과 이해는 곧 우리가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는 정견을 갖춤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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