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승 철(강원대 사학과 교수·박물관장)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13일 전격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원래 8월 15일에 하려던 것을 이틀 앞당겨 강행한 것이다. 일본국민들에 대한 신사참배 공약을 지키고, 또 한국이나 중국등의 반발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 아마 1941년 12월 8일 미명에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도 이렇게 전격적으로 단행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한국이나 중국에 심한 배신감과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고이즈미가 신사를 참배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의 호전적이며 공격적인 태도에 있는 것이다. 유대인 묘역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했던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비교하면 정말 섬나라 근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우리가 현충일에 국립묘지에 참배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야스쿠니 신사는 나라를 지키다 숨져간 애국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나라를 침략하다가 죽어간 악령들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일본군들이 전장터에 나갔다가 죽어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다짐하면서 발대식을 거행하던 곳이다.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자, 연합군은 전쟁의 주모자들을 전쟁의 책임을 물어 교수형에 처했다. 그런데 일본은 이들 A급전범들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했다. 그리고 그곳에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를 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취지를 밝히면서, '나는 오늘, 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존귀한 희생위에서 세워졌음을 다시금 생각하며, 매년 평화에 대한 맹세를 새롭게 해왔다.'라고 했다. 이말을 되새겨 보면, 결국 오늘날의 일본이 전쟁의 영웅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이고, 그는 평화옹호자가 아니고 전쟁옹호자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내각총리대신이 아니라 고이즈미 준이치로서 참배한다고 하면서 헌화비 3만엔을 개인비용으로 지급했다. 그러나 꽃다발에는 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아니라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썼다. 참으로 유치한 작태이다. 차라리 참배를 마치고 걸어나오는 그의 표정만큼 솔직했어야 했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는 최근의 일본교과서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동이다. 교과서에서 전쟁을 예찬하고, 참전자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새 교과서에는 23세에 오키나와에서 죽은 가미가제 특공대원의 유서가 이렇게 실려있다. '지금 나는 여기서 돌격을 개시한다. 몸은 사꾸라꽃처럼 진다해도 영원히 호국의 귀신이 되어, 위기때에는 나는 번성하는 산사꾸라가 되어 어머니옆에 돌아가 피어나리.' 그렇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인들에게는 어머니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우리가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전범들의 위패앞에 머리를 조아려 추모하는 일본총리를 더 이상 친구로 간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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