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버덩말(지금은 문암천)은 사계절 1급수가 흐르면서 머리미끼와 말뚝쩌구는 물론 은어가 어우러져 물반 고기반인 큰 하천이었다.

어린시절 오후가 되면 이곳에 소를 풀어놓고 미역도 감고 쇠철가지로 은어 잡기를 하면서 감자와 옥수수 서리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특히나 감자·옥수수 서리가 여의치 않은 경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빠알간 율구(해당화 열매를 일컫는 고성방언)를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다.

해질 무렵 풀어 논 소의 마지막 배를 채우기 위하여 풀 많은 밭두렁으로 소를 몰고 가면 제방뚝 법면이나 밭두렁에는 으레 달맞이가 있었다.

어린 달맞이는 소가 먹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소는 절대 달맞이를 먹지 않는다.

달맞이가 자라면 길이 3~4㎝의 꽃 봉오리를 맺으면서, 달을 보며 새벽녘에 꽃을 피운다.

놀이 도구가 없던 시절 총알 같이 생긴 달맞이 꽃봉오리로 표창던지기 놀음도 하였고, 나선형인 꽃잎으로 바람개비 놀음도 하였다.

노오랗게 활짝 핀 꽃대를 풀을 뜯던 소가 건드리면 노오란 꽃가루가 저녁 노을 빛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꽃가루는 어느새 풀 뜯던 누렁이의 눈썹을 노오랗게 물들이기도 하였다.

요즘 가까운 들판을 돌아보니 사방에 달맞이꽃이 만발하다.

유심히 관찰해 보니 달맞이꽃이 40년 전 버덩말에서 보았던 그 달맞이꽃이 아니다. 나팔꽃보다 컸던 꽃잎은 어느새 코스모스 꽃잎보다도 작은 배꽃 크기만 한 달맞이 꽃이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하여 꽃잎이 그리 크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터득한 달맞이꽃의 발 빠른 진화일까? 아니면 내가 변한 세월만큼 달맞이꽃에 대한 착시인지 한참을 고민해 본다.

김창인·고성군청 기후변화대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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