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의 위패가 합사돼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했다는 소식과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중학교가 일본내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소식이 광복의 달 8월에 동시에 전해졌다.

한쪽은 숱한 아시아 이웃들에게 극한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군국주의 일본의 과거 회귀성에 심각한 우려를 낳고 다른 한쪽은 다소라도 그 우려를 불식시키는 상반된 소식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

美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 여사(1887∼1969년)’가 그의 말년 역작인 ‘국화와 칼’에서 설파한 일본인의 양면성이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일까.

일본은 도저히 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려와 안도’의 모순적 두 사건을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 처럼 동시에 양산해냈다. 과거사의 피해자인 아시아 이웃들에게 병과 약을 동시에 준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을 한번도 가보지 않고도 일본 연구의 입문서로 평가받고 있는 저작을 남긴 베네딕트 여사는 국화와 칼에서 “이방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쓴 책에는 대부분 그들은 예의바르면서도, 그러나 또한 무례하다는 기괴한 말처럼 ‘but also’라는 표현이 연발하고 있다”고 의아해했다.

“국화(菊花)를 가꾸는데 신비로운 재주를 가진 탐미주의적 국민이 한편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린다”고 반드시 보충 부언을 해야하는, 모순된 양면성이 일본에 관한책에는 날줄과 씨줄처럼 병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종전 직전, 미군은 일본 점령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일본인은 그 질서 유지를 위해 영속적으로 계엄령을 펴지 않으면 안될 국민인가. 아군(美軍)은 일본 산속의 요새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는 일본인과 싸울 각오를 해야 하는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재기불능의 치명타를 가했으면서도 사이판에서, 유황도(硫黃島)에서, 태평양 도서 곳곳에서 옥쇄를 할지언정 항복을 모르는 ‘두려운’ 적과 싸웠던 미군으로서는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직전,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또한’ 점령은 예상외로 쉽게 끝났다. 패전을 받아들이고 평화적인 처세술로 목표를 수정한 일본은 180도 변신을 했다.

“미군 장병은 이처럼 우호적인 국민이 죽을때까지 죽창으로 싸울 것을 맹세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베네딕트 여사는 쓰고있다.

‘공격적이면서도 비공격적’이라는 일본인의 모순적 양면성이 50년 이상이 지난 이번에도 잘 나타난 것일까.일본 총리가 전범들의 위패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그 순간,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우려했던 왜곡 역사책이 그 일본인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지난 20세기말 일본에서는 “빨간 불도 여럿이 건너면 두렵지 않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진적이 있다고 한다. 비토 다케시라는 연예인이 유행시켰다는 이 말은 일본인 정서의 핵심을 찌르는 말로 곧잘 인용된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어도 여럿이 건너면 겁날게 없다는 이말은 과거사에 대한 태도와 연결지어 보면 더욱 절묘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유감이나 ‘통석의 념(痛惜의 念)’ 등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사과는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연례행사처럼 주변국의 반발을 사는 망언(妄言)까지 서슴치않는 행태는 아시아 각국이 아무리 빨간불을 켜도 겁날게 무어냐는 식이다.

국화와 칼 처럼 정말 일본인들에게 모순적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빨간불을 거부하고 함께 파란불을 건널수도 있지 않겠는가.

왜곡 교과서를 거부한 일본의 양심과 시민승리가 파란불을 같이 건너는 동반자로서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보자.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2세는 아시아에서 그들이 만든 집단 따돌림 ‘이지메’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江陵/崔東烈 dy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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