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고 있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하다.

수많은 인파로 몸살을 앓았던 동해안도 빛바랜 한 장의 추억으로 정리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싱그러운 지난날의 추억들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기다리는가 보다.

올 한해 중턱은 예년보다 무덥고 햇갈리는 일들이 많았다.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세무조사와 언론탄압,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포퓰리즘과 휴머니즘, 공조와 결별, 주5일제 근무 등 보통사람들에겐 정확한 뉴앙스를 헤아리기가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했다.

그중 내년 7월부터 시행한다는 주5일제 근무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겠다는데 왜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내년 선거를 앞두고 선심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상에 놀게 해주겠다는데 싫어 할 사람은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매사는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다. 주5일제로 기업주는 생산성이 떨어져 봉급을 올려줄 수 없고 봉급생활자는 IMF 늪속에서 박봉에 살게 뻔하다. 주 5일제가 실시되면 가정불화가 심해져 현재 10쌍중 3쌍의 이혼률이 높아질 것이란 사회학자의 지적도 있다. 옆집은 주말이면 여행을 떠나고 외식을 하며 즐겁게 사는데 우리는 뭐냐고 짜증내는 아내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아빠는 매일 TV에 파묻혀 휴일을 보내느냐고 투정을 부릴 자녀들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의 무능력이 클로즈업 될까봐 걱정이다. 가정의 불화가 파탄의 불씨를 잉태하게 된다. 주말과부 연휴과부가 급증하게 된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라중 주5일제를 안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국제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준법의식과 부패지수 사회복지제도는 하위권이면서 국민소득과 생산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제도 도입은 엄청난 부작용과 고통을 준다. 최근의 실례를 보자. 대부분의 선진국이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의약분업 의료보험제도의 실상을 보라. 온나라가 몸살을 앓고 국민들은 보험료 부담만 크게 늘어나 생계에 주름을 주었다.

주5일제에 대해 야당 정책위의장은 '인기를 위해 제도와 정치를 뛰어넘는 포퓰리즘의 표본'이라고 비판했고 노동부장관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휴머니즘'이라고 응수했다. 포퓰리즘이든 휴머니즘이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만연되어 땀의 소중함을 상실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담해질지도 모른다.

시간만 주어진다고 놀 수 있는게 아니다.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생활문화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메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그때를 생각해 보라. 30여년전보다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괜히 놀게 해준다는데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쓰름하다. 이 넉넉한 가을에 ---.



咸鍾得 기획국장
jdha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