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종국

기독교감리회 동부연회 감독
유대인 사회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1878~1938)는 “온갖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하며 ‘나와 너’라는 인격적이고 대화적인 관계가 인간세계의 참된 관계임을 역설하였다.

사실 ‘현대성’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네트워크’(network)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세계는 그물망을 이루듯 서로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이미 1967년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Stanly Milgram)이 무작위로 선택된 두 개인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서 그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지인(知人)이 필요한가를 한 연구에서 5.5단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여 최초로 세상이 얼마나 좁고 관계성 속에 놓여있는지를 알게 하였다.

지금 우리도 이 사실을 실감하는 것은 정부가 시행에 들어간 4대강 유역개발 사업이나 특히 세종시 개발 문제에 우리 강원도가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런 정부의 정책과 강원도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집중 되느냐는 곧 우리 강원지역의 현실과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지역이 소외되거나 정부의 약속 이행에서 불확실성을 내비친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강원지역 주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시대는 가깝고 조밀한 관계형성을 인식시킬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협력’의 문제를 더 민감하게 느끼게 한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역류할 수 있겠는가.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1980년 ‘물결’의 개념으로 사회와 역사를 표현할 때 ‘제3의 물결’로 표현하였다. ‘제3의 물결’ 시대는 균형과 재활용성에 대해 점증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보존·삶의 존엄 그리고 협력의 문제에 더 민감해진다고 지적하였다. 이어서 ‘제4의 물결’을 말하는 허먼 메이너드2세(Hernman Bryant Maynard, Jr.)와 수전 머턴트(Susan E. Mehrtens)는 21세기를 바라보며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삶의 통합과 전체에 대한 책임이 우리 사회의 중심적 초점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시대는 지역과 국가를 초월하여 함께 살아갈 창조적 공동체의 형성과 협력, 통합을 이루는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 예측된다고 하였다.

우리 강원도민일보는 이 시대에 걸 맞는 정보지로 함께 사는 상생의 네트워크 역할을 추구하고 있다고 본다. 적어도 강원도는 미래의 행정권역이 어떻게 전개되든지 지역적 공감대를 이루는 청정자원지대로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하고 또 강원도민일보는 이런 정보교환에 일체감을 주는 창조적 협력공동체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필자가 섬기는 기독교대한 감리회 동부연회는 강원도 전역이다. 여기에 630개 교회가 서 있다. 절반 가까이는 열악한 환경과 생활자체가 힘겨운 교회와 교역자들이면서도 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모두 주님의 교회이다. 함께 부흥하고 함께 사역해야 하는 하나의 패밀리다. 그래서 우리는 큰 교회, 작은 교회 모두 참여해서 사랑의 기금을 모으고, 각종 기술을 모으고 하여 자립에 필요한 교회와 교역자들을 돕고 있다.

그런 운동이 모음나눔(모나)운동이다. 성경의 초대교회를 본받는 운동이기도 하다. 모나운동정신은 이 시대 새마을 운동이고, 상생의 네트워크운동으로 함께 사는 참된 관계의 운동이다. 모나운동의 협력자가 증대되고 함께 희망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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