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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담 풍(風) 세상

신중경 2009년 12월 03일 목요일
   
▲ 신중경

소설가
호텔 특실에는 여러 쌍의 부부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5성급 특급 호텔이었다. 실내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작품 97 내림 B장조 ‘대공’이 잔잔히 흘렀다. 이 곡은 흔히 ‘대공 트리오’로 불렸고, 고금의 실내 악곡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었다. 이들이 타고 온 차는 모두 기사가 딸린 외제차였다. 복장도 조르지아 아르마니 같은 최상품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최고급 와인으로 축배를 들었다. 스테이크도 잘게 썰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물론 미국산이 아닌 1등급 한우였다. 미국산은 전·의경들의 기호 식품이기에 당연히 외면했다. 이들의 행동은 신사답고 요조숙녀 같았다. 수시로 입가를 닦고 와인도 음미하듯 마셨다. 대화는 잔잔히 흐르는 시냇물 같았다. 말소리도 작았고 크게 웃지도 않았다. 속삭이듯 대화했고 미소로 답했다. 사람을 논하거나 세상을 논하지도 않았다. 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유일하게 논한 것은 ‘강철중’이었다.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그를 벌레 같은 놈으로 취급했다. 서민들이 생각하는 정의의 사자가 아니었다. 경사에서 순경으로 강등시킬 게 아니라, 아예 잘라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박 모임의 생각은 늘 그러했다. 인사 청문회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각료 후보자를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었다. 후보자들 대부분이 만찬을 즐긴 사람들이었다. 청문회가 시작되자 아가리로 처먹은 것을 주둥아리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병역면제와 위장전입, 탈세와 탈법, 투기와 이중국적, 논문표절과 다운계약 등이 주 쟁점이었다. 외부기관과 단체의 자문과 고문, 사외 이사로 챙긴 수억원의 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부인을 팔고 자식을 팔거나 친인척을 팔았다. 위기 때마다 오리발을 내밀면서 버티기 작전으로 나갔다. 바람 ‘풍(風)’이라고 해도 바담 ‘풍(風)’이라고 우겼다. 그럴수록 한쪽에서는 ‘단심가’로 파고들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아예 ‘하여가’를 부르면서 그들을 옹호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웃기는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밥상머리 ‘바담 풍(風)’교육이 문제였다.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조심하라고 가르쳤다. 외고나 과학고를 나와 ‘SKY’ 라운지에서 놀라고 했다. 의식주도 최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가리와 주둥아리’ 교육도 필수였다. 물론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의 특성을 내면에 심어주었고, 아무리 벗겨도 속이 보이지 않는 양파 이론도 가르쳤다. 수박 같은 모습으로 양파 같은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었다. 침팬지가 스승이고 오랑우탄이 제자였다. 인간과 1%의 유전자(배려심)가 다르고, 5%의 유전자(피와 땀과 눈물, 표현력과 배려심)가 또 다른, 정치꾼과 공복(公僕)이 바로 이들이었다. 바담 풍(風)의 삭풍은 늘 이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것이 곧 요즘 서민들의 불만이었다. 바람 풍(風)이 바담 풍(風)으로 변해 가는 이 풍진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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