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병태

태백 장성중앙교회 담임목사
1960년대 후반에 미국의 은퇴 기자의 가정에 입양된 한국인 아이가 있었다. 위로 미국인 형 둘과 누이 한 명과 더불어 모두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달랐다. 처음엔 착하게 자랐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검은 머리, 유색 인종으로 갈등하기 시작했고 불량배와 어울리고 패싸움도 일삼게 되었다. 그러나 양아버지는 꾸중하기보다 사랑으로 지켜보며 기도하였다.

어느 날 아이가 울면서 양아버지에게 말했다. “왜 나는 이렇게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르죠? 그 비밀을 말씀해주세요.” 이 말을 들은 양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란다. 너무나도 훌륭하신 어머니의 아들이다. 너의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 너를 구하셨단다. 한국전쟁 때 난 종군기자로 근무하다가 1·4후퇴 때 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피신하는 중이었단다. 그때 겨울의 칼바람은 살을 에는 듯이 추웠지.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연료가 떨어져 차가 멈춰 서게 되었고 급히 부대로 연락을 취했었지. 그런데 그 근처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서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여인이 벌거벗은 채 온 몸을 새우처럼 동그랗게 말아 마치 소중한 보물이 있는 듯 무엇을 끌어안은 채 죽어 있었고, 그 속을 헤쳐 보니 갓난아기가 떨면서 몹시 울고 있었단다. 해산하러 친정으로 가다가 거기서 아기를 낳게 된거야. 어머니는 아이가 얼까봐 입은 옷을 벗어 아이에게 덮어주고 불어있는 젖을 물리면서, ‘아가야 엄마는 이제 곧 죽는다. 이 젖이 마지막으로 네게 해 줄 수 있는 이 어미의 모든 것이 되겠구나! 아가야 이 엄마를 용서해 다오. 그리고 꼭 살아만 다오…’ 나는 여인의 모성애에 너무나 감동하여 여인을 근처에 곱게 묻어 주었단다. 난 그 아이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거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데려와 키웠단다. 그 아이가 너고 그 여인은 네 어머니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날 이후로 아이는 달라졌다. 그 후 열심히 공부하여 흉부외과 의사가 되어 군의관으로 한국으로 왔다. 추운 겨울날 한국에 온 그는 양아버지에게 들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갔고 어머니의 무덤 앞에 자신의 옷을 벗어 무덤 위를 덮고서 밤새도록 꿇어앉아 울면서 이렇게 속삭였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그 날은 이보다 더 추우셨지요? 어머니! 어머니!” 애틋하고 아름다운 가슴 싸한 사연이다.

올해도 어느새 연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연초에는 화려한 계획들을 벅차게 품고 달려왔지만 지금은 허허로운 가슴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작금은 양보하면 꼭 손해 보고 무능한 것 같아 악착같이 살아왔지만, 마음이 흔쾌치 않아 번뇌의 시간이 얄밉게 비집고 들어온다.

이제 캐럴이 울려 퍼지고 성탄절 트리가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는 들뜬 거리도 곧 볼 것이다. 우리는 눈코 뜰 새 없이 살아왔어도 제대로 산 것 같지 않은 허전함을 달래려고 더욱 일감 속에 자신을 밀쳐버린다. 현대인의 슬픔이요 문명인의 고독이며 부유함이 빚어낸 과제이다.

올해가 다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가져보고 본래의 나를 찾아보자. 나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 사람을 기억하고 그에게 작은 고마움이라도 전해보자. 배려가 깊은 이가 보인다면 멘토로 삼아 보자. 그러다 보면 혹시 나도 성현들이 가졌던 덕의 일부를 전수받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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