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규

전국남선교회 상임부회장
원주시 태장동에 있는 ‘육판정’(六判亭)이라는 작은 정자에 가면 염신불구무병(念身不求無病)이란 글이 붙어 있다. 이 말의 뜻은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 하시되 병고로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다’라는 내용이다. 즉 우리 몸의 약한 부분을 감내할 줄 알라는 의미일 것이다.

눈에 티가 들어가거나 몸에 가시가 박히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몸 전체에 영향을 준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찌르는 가시를 제거 하지 않으면 고통을 면할 수 없다.

성경에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평생 동안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아 고통 중에 지내야 했음을 우리들은 많이 들어왔다. 인간에게 어떤 약점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삶에 장애가 반드시 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약점이 큰일을 할 수 있는 자극제(양약)가 되기도 한다. 물론 무조건 약한 자가 강자라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약할 때라야 우리가 강자가 되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준다.

미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불이 난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불을 끄기 위해 줄을 서서 물을 퍼 날랐다. 추운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한 학생이 앞쪽 연못에 들어가 물을 퍼 주고 있었다. 그 학생은 원래 허약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이 모습은 무척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스스로 자청해서 물속으로 들어간 것이었으니 놀라움은 더했다.

“자네는 몸이 허약하지 않은가, 어째서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학생의 몸이 허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교수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물을 푸는 것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이 일은 분명 누군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제가 먼저 맡았을 뿐입니다.”

이 학생의 능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정중하게 대할 만한 인품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면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지도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거만하게 과시하면 착각에 이른다.

한 노인이 정원에 ‘배나무’를 심으려고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노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매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영감님, 거기에 배나무를 심어도 한참 뒤에 열매가 열려 영감님은 드시지 못하고 돌아가실 텐데 왜 그렇게 힘들게 일 하십니까”라고 이웃 사람이 노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 노인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 배나무는 내가 먹으려고 심는 게 아닙니다. 나는 평생 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내가 먹은 배는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사람이 심은 배나무에서 열린 배였지요. 나는 배를 따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먼 미래를 준비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으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참다운 지도자는 능숙한 지도력을 갖추고 있으면 될 것이고, 유권자들이 내는 목소리를 잘 경청해서 자발적으로 그들의 지도를 받아들이는 미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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