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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지는 없는가

편백운 2010년 04월 30일 금요일
   
▲ 편백운

태고종 강원교구 종무원장

(춘천 석왕사 주지)
삼국지를 읽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관운장이 하비성 싸움에서 조조의 포로가 되어 지낼 때의 일이다. 조조가 관운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급 비단옷 한 벌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조조가 어느 날 그를 보니 그 전에 입던 허름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보고 조조가 물었다.

“내가 비단옷을 보내준 일이 있는데 왜 입지 않았소” 그러자 관운장이 입은 옷을 들춰보이며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여기 속에 입고 있습니다”

조조가 다시 물었다. “새옷이 생겼으면 헌 옷은 벗어 버려야지 왜 아직도 그대로 입고 있소 또 껴입을 것 같으면 헌옷을 안에 입고 새옷을 위에 입어야 하지 않겠소” 이에 관운장이 대답하였다.

“물론 그리해야 하겠지만 이 위에 입은 옷은 우리 주군께서 내려주신 옷입니다” 여기서 주군은 말할 것도 없이 유비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관운장이 유비에 대한 신의인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 후 관운장이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로 돌아간 뒤 저 유명한 적벽대전이 일어났다. 그 때 그 싸움에서 수염을 불에 그슬리는 수모까지 당하며 참패한 조조가 초라한 행색으로 쫓겨가면서도 세 번째 웃었다는 조조 삼소처인 화용도라는 곳에서의 일이었다.

그 때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장수가 관운장이었다. 관운장은 그런 조조를 얼마든지 사로잡을 수가 있었으나 지난 날 그가 베푼 정이랄까. 하여튼 그런 것을 생각하여 그가 그 곳을 통과하도록 눈을 감아주었다.

이것은 관운장의 조조에 대한 의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의와 의리,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마땅히 취해야 할 떳떳한 길인 것이다. 사람이 신의를 얻지 못하면 세상 살기가 힘들고 아무 일도 도모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그를 믿어주지를 않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의리가 없으면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해 사람행세를 할 수가 없다.

사람으로 취급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불량사회라고 부르는 뒷골목에도 신의와 의리는 있다. 그들은 그것을 생명보다 더 중히 여길 때도 있다. 그래서 못된 사람을 말할 때 ‘의리도 없는 놈’ 이라고 하지 않는가.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년 동안 정을 나누고 운명을 같이 해오다시피 한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는 그 절망감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무상함마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오랫동안의 동지가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람 사이에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있고 이해가 다를 수도 있다. 그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관운장 같은 신의와 의리는 못 가질망정 인간이라면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고 모함하는 일만은 삼가야 할 것이다.

현대는 정과 의리가 그리워지는 사회가 되는 것 같다. 한번 동지면 영원한 동지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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