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조시인 김은숙


길을 떠나 온 자에게만 집으로 가는 그 아득한 길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늘 다니던 길이라 무관하게 졸고 있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대관령을 오르고 있었다.

한달 남짓이면 새로운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세 갈래 길로 나누어진다. 숱한 삶의 애환이 깃든 옛길과 현재 달리고 있는 길, 또 하나 미래의 고속화 길이다.

과연 어떤 길이 우리의 삶과 정서를 아름답게 꾸며 줄까?

초등학교 갓 입학하여 얼마 되지 않아 트럭에 이삿짐을 가득 싣고 동생과 어머니는 운전석에 앉고 나와 오빠는 트럭 뒤 좁은 새간 살이 틈에 끼어 앉아 아득히 멀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서울로 갔었다.

초겨울인지 스산한 바람이 불어 낙엽이 길바닥 모퉁이로 몰려 다녔다는 기억밖에 그후 망각의 저 쪽으로 밀려가고 이 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절이 주는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를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진달래에 산벚나무까지 무성한 초록 산등과 여름 날 안개 피는 꿈길, 가을이면 쑥부쟁이 마타리 갈대의 춤, 그 찬란한 가을 빛깔 속에 묻히어 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싶었는데…


몇 해전 문학모임에서 대관령 옛길을 넘자는 제안이 있어 각자 김밥말이 준비하여 눈 덮인 옛길을 정상에서 하산할 계획을 세워 내려 온 적이 있었다.

전 날 다녀왔다는 강릉 친구가 눈 위에 새겨둔 내 이름석자를 보고 얼마나 감격했던지! 튀방처럼 흩어진 눈발이 봄이면 진달래꽃이 되어 이 산하 참꽃 빛으로 물 들렸으리라.


이제 21세기를 달리는 미래는 길이 열린다고 한다.

행여 산새나 들짐승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은 아닐지 송골매 두 마리가 새끼를 낳아 다른 곳으로 날아 갈 때까지 공사를 중단했다는 멜버른에서 날아 온 소식이나, 까치 한 쌍이 새끼를 낳아 다른 곳으로 날아 갈때까지 공사를 중단했다는 서울이야기는 곧 사랑과 자비로움이 언제 어디서나 자라고 있다는 말인데 염려되어 하는 말이다.


농경사회에는 운반수단인 지게를 지고 다니면 족한 토끼길이 있었는데 편리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라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다목적 생활수단의 고속화가 되었다.

미래의 길은 어떤 의미로 우리의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편리한대로 길들어져 있으니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있으리라. 대관령 정상에 오르니 강릉시내가 뿌연 안개 속에 꿈속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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