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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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로 조선 숙종 시대 궁중 여인네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개되고 있다. 숙종 다음 임금인 경종을 낳은 희빈 장 씨와 그 다음 왕인 영조를 낳은, 뒷날 숙빈이 되는 최 씨 곧 ‘동이’ 사이의 긴장된 경쟁을 다루는 이 드라마는 복잡한 당시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먼저 기사환국이다. 1680년 조선 숙종 6년, 계비 민 씨가 왕자를 못 낳자 숙종은 후궁 숙원 장 씨를 총애하게 되며, 장 씨가 아들을 낳자 이 아이를 원자로 책봉하고 장 씨를 정비로 삼는다. 집권 세력 서인은 이에 반대하고, 남인은 숙종의 뜻을 지지한다. 그리하여 서인의 정치 거물들이 물러나고, 남인이 득세하게 되는 대전환이 일어나는데, 이게 기사환국이다. 다음은 갑술환국이다. 1694년 숙종 20년, 숙종은 민 씨를 폐한 일을 뉘우친다. 그리하여 숙종은 서인의 폐비 민 씨 복위 운동에 공감하여 이번엔 남인을 몰아내고 정권에 서인을 들이게 되는데, 이것을 역사는 갑술환국이라 이른다.

이를 보면 숙종은 여인에 대한 사랑의 온도 차이로 집권 세력을 바꾸는 가벼운 혹은 로맨틱한 임금인가? 그렇지 않다. 드라마 사극이 어떻게 그려내든, 정치사적으로 살필 때 숙종은 서인과 남인이란 정파의 정치 농단 및 전횡을 누르기 위해 반대파를 등용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장악하려 했던, 정치 현실적 고민에 짓눌렸던 통치자다. ‘환국(換局)’은 말 그대로 ‘국면을 전환한다’는 의미다. 즉, 국왕이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집권케 함으로써 자신이 직면한 정치적 난맥을 타개하려 한 정치 양상을 뜻한다.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이른바 ‘환국 정치’는 17~18 세기 조선 숙종-경종-영조 시기에 주로 활용됐다.

연인들과의 사랑이 먼저인가, 정치적 국면 전환이 먼저인가? 드라마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오늘 우리의 현실 문제는 당연히 숙종이 정치적 세력 균점을 고민했다는 점과 관련된다. 정권을 잡은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하고, ‘노론 정파(正派)’니 ‘노론 청명당(淸名黨)’이니 하다가 이후 사도세자 사건으로 ‘시파(時派)’와 ‘벽파(僻派)’로 또 갈린다. 이런 측면에서 국왕들의 정파에 대한 고심과 고민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읽을 수 있다.

정파 간 갈등을 타개할 의도로 영조는 드디어 탕평책을 쓴다. 영조의 탕평책은 소론 온건파와 노론을 고루 기용하는 것으로 ‘호대쌍거(互對雙擧)’라 불렸다. 이는 한 부서 안에서 각 당파를 고루 등용하는 방식, 예컨대 판서(장관)가 노론이면 참판(차관)은 소론을 등용하는 식으로 하는 인사 방식이다.

우리들의 논의가 드라마 이야기가 아님을 이쯤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당선자들은 지금 인사 구성 문제로 복잡한 마음이 돼 있을 듯하다. 당선에 이르도록 갖가지 노력을 해온 ‘남인’을 쓰자니 ‘서인’이 의식되고, ‘소론’을 등용하자니 ‘노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며, 쓰면 ‘시파’로 동조하겠지만, 안 쓰면 ‘벽파’가 돼 비판을 마다 않을 것이니, 이 또한 신경 쓰일 터이다.

이번 선거가 비록 지방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중앙 정치와 연관돼 보수니 진보니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것에 영향받았다. 그 결과 강원도에서 발견하기 어렵던 진보 세력이 이념적 헤게모니와 무관하게, 아니 잠재돼 있던 진보적 사유들이 표면 위로 떠올라 단체장과 교육감에 오르게 됐다.

이제 어쩔 것인가?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힐 것인가? 이에 진지하고도 둔중하게 제언한다. 좀 길게 에두르더라도 진보는 지구적(持久的)이어야지 단숨에 이뤄지지 않는다. 진보 인물을 쓸 때 동시에 보수 인물을 병치해야 안정 속에 진화가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다시 탕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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