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이야기 디지털시대의 정밀함처럼 재개발 바람을 타고 구획 정리가 되고 소방도로가 뚫리면서 골목골목이 바둑판처럼 획일화되어 간다. 일직선을 고집하며 조금의 굴곡도 허용치 않는 골목들을 보면 나는 면도날에 베인 듯 저릿하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면서 비좁고 허술하게 펼쳐지는 골목길 풍경이 차츰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모세혈관처럼 좁아터진 골목골목에 매달려 한 생을 이루며 살지 않았던가. 어릴 적 골목길의 추억 몇 개 쯤 가슴 속에 품고 있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처와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골목길과 우리네 인생살이는 무관하지 않다. 골목길의 시발점을 쫓다보면 한국전쟁에 이른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골목길은 생성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안간힘이 골목길을 이룬 원동력이며 밑바탕이다.

각박하면서 치열한 실생활이 골목길을 형성한 것이다. 나이테가 나무의 생을 압축하고 있듯이 골목골목은 근대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네 삶을 압축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그물망을 펼치고 있는 골목골목은 한국인들의 공동체의식의 산물이다.

그물처럼 펼쳐진 골목골목에 그물눈모양 들어선 집들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뭉쳐 군집을 이루려는 민족성을 근간으로 한 공간구조다. 바둑판처럼 펼쳐진 요즘 골목처럼 인간 상호 간에 경계선은 명확해졌고, 한민족의 공동체의식은 와해되어 가고 있다.

군집을 이루었던 한민족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구획정리를 하듯 서로를 냉정하게 구분하고, 나의 경계선을 철저하게 사수하며 타인에게 한 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으려 한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건 물질만능도 아니고, 비약적인 과학 발달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도 아니고, 온라인으로 구축한 가상현실의 세계도 아니다. 우리 삶을 떠받치는 것은 골목골목이다. 세상과 사람 사이엔 골목이 있었다.

골목은 사람과 세상을 연결시켜 주었다. 더 나아가 골목은 인간 상호 간에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통로였다. 골목은 너와 나를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로 연결시켜주었다. 다들 대로에서 바퀴에 휘감겨 삶을 앞당기려 하지만 뒤처진 발걸음은 뒷골목을 서성거리고 있지 않은가. 바람 부는 날이면 오래된 골목이 뼛속 깊은 울림처럼 간절하다.

최일걸·KBS라디오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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