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근

강릉원주대 교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 가사처럼 정말 동해물이 다 마른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사는 동해안 해안선은 산 중턱이 될 것이고 울릉도와 독도는 협곡 속의 높은 산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울릉도 동북방향 쪽으로 높게 솟아오른 바다 밑 산으로, 해저의 섬인 ‘대화퇴’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동해 바다는 한반도와 러시아, 일본열도로 둘러싸여 있다. 지도를 펴면 이 바다는 ‘동해(East Sea)’로 표기되고 있다.

그런데, 그 바닷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해산, 황금어장은 ‘대화퇴(大和堆)’로 적혀 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이름도 대화퇴다. 따져보면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름이다. 이 해저산이 대화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일본의 해양탐사선 ‘야마토(大和)’호가 이곳에서 난파된 후부터라고 한다.

야마토는 5세기경 일본의 대부분을 통치하게 된 나라 이름으로, 일본을 상징하는 의미의 용어로 지금도 쓰인다. 동해 한가운데, 우리 어선들이 조업을 하는 중요한 해역을 식민지 시대부터 일본 이름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우리 이름으로 바꾸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해저산(해산)이란 수중에 잠겨 있고 해저로부터 1000m 이상의 높이로 솟아 있는 곳을 말하는데 대화퇴 어장은 ‘동해의 가장 크고 넓은 해산(동해대해산)’이라 할 수 있다.

대화퇴 어장은 주변 해저 수심이 3000m로 깊은 바다에서 융기한 2개의 해저산은 그 넓이가 수심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대략 수심 1000m를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의 해산을 합한 넓이가 강원도 정도의 크기가 된다.

이 해산은 오징어 조업의 중심 기지이면서 수산자원이 풍부한 어장이다. 해방과 전쟁 후 무동력 어선이 먼 어장에 나가지 못할 때에는 이곳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우리 어선들이 먼 어장이나 해외 어장을 개척해 나간 시기는 1970년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후 선박이 대형화되면서 동해 대해산을 중심으로 한 해역은 동해의 주요 어장이 되었다.

이 어장은 용승작용으로 저층의 영양염이 빠르게 상층부에 전달되어 식물플랑크톤의 생산량이 많아지고, 이를 기초로 하여 해양생물의 생산성이 다른 곳보다 훨씬 높아 우리 어업인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왔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흑산도 주변 일향초는 일본이 강점하던 시기에 좌초되었던 일본 군함의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되었는데 2006년에 가거초로 개명돼 늦었지만, 제 이름을 찾게 되었다. 대화퇴 어장은 공해상인 점이 다르지만, 발해인들이 이용하던 항로였고, 우리 어업인들에게 삶의 터전이 돼 왔다는 점에서 ‘동해 대해산’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더욱이 동해안은 신라때 이사부장군이 울릉도·독도를 역사에 편입시킨 주무대이기도 하다.

1998년 한일 어업협정으로 이 어장의 일부는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에 포함되고, 일부만이 한일 중간수역에 포함되어 예전보다는 조업 활동에 제약이 많다.

그러나 우리 어선들이 우리 이름이 붙여진 바다에서 안정적 조업활동을 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당연한 바람 아니겠는가.

지금도, 또 앞으로도 ‘동해 대해산’에서 조업 활동을 해 나가야 할 어업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 동해안이라고 할 때, 동해안에서부터 우리 이름으로 바꿔 부르면서 해저지형이나 해류, 수산자원, 바다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노력을 유도해야 한다.

동해물이 마르지 않더라도 동해 바닷속 지형이 육상의 등고선처럼 그려지고,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