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연수

수필가
가을이다. 소맷자락으로부터 오는 가을. 달라진 바람살로 감지한다. 갈 바람은 우리의 살갗을 스치며 온몸을 전율케 하고, 영혼을 일깨운다.

가을은 소리없이 왔다가 사라진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의 기억은 금세 잊어버리고 가을의 시간 앞에 서면 우리를 무릎 꿇게 한다.

달이 밝은 가을 밤 창가에 서면 그리움이 목까지 차 오른다. 그리움은 근원을 모르는 슬픔이다. 글쎄, 이것이 가을의 얼굴인가, 가을의 손짓인가. 눈부신 가을 풍경을 눈앞에 그려 본다.

길가에 연약한 몸을 애처로이 휩쓸리며 가녀린 손짓을 하는 코스모스의 행렬, 무리지어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들국화의 애잔한 미소,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실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순수한 아름다움, 붉게 물들어 가는 빨간 단풍잎, 동장군을 대동하여 찬 북풍에 금비의 황금빛을 더해 가는 노란 은행잎, 청명한 하늘에서 저공비행을 하다가 꽃잎에 살포시 내려 앉아 휴식을 취하곤 하는 빨간 고추잠자리, 자연의 무대에서 풀벌레들의 합창이며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들의 노래잔치!

가을이 없었다면 인간에게 철학이 없었을 것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가을의 긴 밤을 통해서 인생을 생각하는 깊이를 더했고 학문을 연마했으며, 자신을 가져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이 오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삶이다. 가을에서 느끼는 감정의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아마도 마음의 빛깔은 같을 것이다.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면 구르몽의 시가 생각나고, 옛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에서는 신록의 계절이 연상되며 인생의 여정과 동반된 느낌을 준다.

갓바위 순환도로 길가에 억새와 코스모스가 함께 어우러져 바쁜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억새와 코스모스, 서로 궁합이 맞는 상대인 것 같다. 억새꽃이 카리스마가 있는 남정네의 꽃이라면, 코스모스는 가냘픈 아낙네의 미소라고나 할까? 이 둘은 뭔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그 해 가을 민둥산 억새 산행에서 하얀 가을 축제를 만났다. 억새의 군락속 가을에 파묻혔다. 사람들이 그리운 걸까? 억새들이 무리지어 운다.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르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난다. 억새는 하루에 세 번 모습을 바꾼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은억새, 붉은 노을에 비껴 금빛으로 빛나는 금억새, 달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솜억새다. 억새꽃이 떨어지면 이상스레 스잔해진다. 억새가 와삭 와삭 슬피 울 때면 왠지 마음이 쓸쓸해 온다.

해마다 이맘때면 만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늘어진 수수 이삭에 참새 떼 입질이 사나워질 즈음, 발갛게 물든 감나무 잎이 장관을 이룬다.

단풍 중에 제일 아름다운 단풍이 무슨 단풍일까? 나는 감나무 단풍을 첫째로 꼽고 싶다. 비록 화려하진 않으나 빨갛게 물든 감나무 단풍은 참 곱고 아름답다. 수수한 중년 여인의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다. 감나무 밭을 지나면 은은한 여인의 향기가 풍긴다. 감 단풍의 낙엽을 태우면, 중년여인의 향수 냄새가 난다.

감나무 밭길을 거닐면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란 글이 생각나고, 옛 연인과 거닐던 추억이 어른거린다.그래서 난 화려한 단풍잎보다 감나무 단풍잎이 더 좋다.

어느 시인은 이 청정의 가을이 눈물처럼 슬프다고 했다. 그러나 난 가을을 황홀하고 눈부신 낭만의 계절이라고 노래하고 싶다. 누우런 황금빛 들판은 제외하고라도. 어디선가 소슬바람 한 줄기가 목을 간질이며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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