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에 오르려고 양손으로 둥치를 붙잡고 고개를 뒤로 발딱 젖혀 위를 올려다 보니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골목골목을 열어 보인다.

내 삶의 여러 대목들이 저렇게 많은 골목을 열어놓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나무는 단단하지 못해 가지가 부러지는 일이 허다하다. 아버지도 예전에 감을 따시다가 가지가 부러져 관절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아버지가 떨어진 곳에서 감을 줍고 계시던 할머니도 부상을 입으셨다.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다리에 긴장이 더해지자 종아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간짓대가 있기는 하지만 짧고 제대로 힘을 지탱하지 못해 나무 타기를 각오해야 했다. 손을 뻗어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뚱이를 위로 끌어올린다. 둥치에 밀착한 양 발이 자꾸 미끄러지려고 해서 발바닥에 힘을 몰아넣는다. 간신히 옹이를 밟고 오르자 감나무는 내가 걸터앉을 만한 자리를 열어준다. Y자리로 휘어진 나뭇가지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고 앉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손바닥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가을이 깊어진 만큼 이제 감나무 이파리들은 초록빛을 잃었다. 사시사철은 압축하여 울긋불긋 빛깔로 물들어 인화지 같아 보인다. 가늘게 눈을 뜨고 지상을 내려다 보니 감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파리마다 잎맥을 돋우어 지난 생을 간직하고 있다가 가을이 오면 인화와 현상을 거쳐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이리라. 허공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기까지 이파리들의 생 또한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사방으로 뻗어 오르는 가지에 매달려 태양을 향해 열어놓았던 생을 거두어 지상에 내려놓는 데는 그만한 이치가 있을 것이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무거워 보인다. 그 무게를 덜어내려 신의 손을 빙자하는 것은 아니다. 빈속을 채우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감을 따고 나면 새로 움트는 빈 칸에서 자연의 순리를 읽어 내려가고 싶다. 나뭇가지 위의 내 삶은 곡예사의 그것처럼 위태롭다. 족보를 읽듯이 나뭇가지를 더듬어 본다. 나무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이 감나무는 이 순간에도 물관에 수분을 공급하며 태양을 끌어당겨 광합성 작용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뭇가지를 밟고 있으려니 내 뼈마디가 들쑤신다. 내 삶의 구절구절이 나뭇가지를 이루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게다.

이제 그만 지상으로 내려가야겠다. 나무처럼 뿌리 내리지 못한 인간의 삶은 얼마나 헛헛한가. 인간은 천벌을 받은 듯 지상을 떠돌다 생을 마감한다. 내 생이 다한다면 나무에 뿌리 내리고 싶다. 그리하여 가지를 툭툭 뻗어 올려 별들에게 자리를 점지해 주고 싶다. 몸 안에 탱탱하게 들어찬 태양 때문에 뜨거울 것이다.

최일걸·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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