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완

영월 법흥사 주지
너무도 놀란 가슴에 할 말을 잃었고, 졸지에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희생자와 연평도 주민들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슬픔과 분노의 소용돌이가 멈추지 않는다.

6·25전쟁 60년만에 다시 이 땅에 민간인을 무차별 포격하는 북한군의 포성이 울렸다. 그나마 지난 10여년간 햇볕정책이다, 남북 정상회담이다 해서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에 남북간의 거리가 한층 가깝고 친근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남쪽 동포들의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배신감이 치밀어 오른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26살짜리 3대 세습정권’의 안착밖에 없고, 그 목적을 위해선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핵무기도, 연평도를 쑥대밭으로 만든 해안포도 모두 전쟁놀이의 장난감에 불과했으며, 남쪽 주민들의 생명 따위는 고려할 가치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리 속담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하더니, 반만년 역사를 같이 해 온 민족끼리 어쩌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동부전선 대부분을 북한 인민군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접적지역인 우리 강원도 주민들의 분노와 걱정이 태백산과 금강산을 타고 넘는다.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냉철하게 현실을 돌아보자. 응징과 보복을 촉구하는 들끓는 국민 감정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아함경>이라는 경전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지팡이에 의지해 외롭고 쓸쓸하게 문전 걸식하는 늙은 바라문(힌두교의 수행자)을 만났다. 부처님은 그 바라문이 왜 그토록 처량한 신세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런 게송(偈頌)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고 그 아들을 위해 애써 재산을 모았네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 오히려 나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네

어떤 시골의 부랑한 자식이 늙은 아비를 등지고 버렸으니

얼굴은 비록 사람이지만 마음은 나찰(사람을 잡아먹는 악귀)이로다.

늙은 말은 쓸모없다고 하여 보리 껍질 먹이까지 빼앗겼나니

힘없이 쫓겨난 늙은 아비는 거리를 떠돌면서 먹을 것을 구걸하네

늙은이에게 자식보다 지팡이가 나으니

자식은 귀하다고 애착할 것 아니다

구부러진 지팡이는 소나 개를 막아 주고 험한 곳에선 나의 의지처가 되며

가시덤불을 헤쳐 길을 가게 해주니 못된 자식보다 말없는 지팡이가 낫다네”

이제는 감상적 민족주의도, 막연한 친북 좌파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도대체 북쪽의 사람들이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에게 단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대했던 경우가 있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대를 이어 충성하는 세습정권의 안보만이 유일한 신념이자 종교였던 것이다. 나뭇꾼이 숲에 와 도끼자루를 만들 나무 한 그루만 자르게 해 달라고 간청해, 그러라고 했더니 도끼를 만들어 나머지 고목들을 모두 베어 버렸다는 우화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인과응보의 진리는 다음과 같다.

“전생(前生)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금생(今生)에 받는 삶이 그것이다/내생(來生)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금생(今生)에 짓는 선악이 그것이다”<아함경>끝으로 강원도민일보의 창간 18주년을 도내 모든 불자들과 함께 축하드리며, 반드시 이루어야 할 민족통일 시대의 중심 언론으로 발전하시길 두손 모아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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