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기홍

천주교 춘천교구 홍보실장·신부
요즘 성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곳은 어디일까. 거리의 구세군, 교회, 유감스럽지만 아니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이다. 교회보다 훨씬 빠르게 성탄 장식을 시작하고 동방박사보다 먼저 다양한 선물을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매체를 통한 광고들은 성탄의 낭만을 사라고 부추긴다.

존 프란시스 카바나 신부는 ‘소비 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라는 책에서, 상품화된 삶의 방식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명백한 가치들은 ‘시장성’과 ‘소비’인데, 이 가치들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짓는다고 하였다.

곧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이고, 더 많이 생산하는 사람은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교육에서 가치는 오로지 생산성, 양적인 등급, 경쟁력에 따라 결정된다. 가정에서는 성숙한 인격자가 되는 길과 사랑 보다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다. 종교에서도 신자 수와 성소자 수의 증가에 따라 평가된다. 이처럼 많은 분야에서 시장성이 중요한 성공의 잣대가 되고 있는 판국이다.

카바나 신부는 “우리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때에 최신 유행의 선물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자신은 초라하고 불쌍하다고 느끼게 되는지, 곧 어떻게 세뇌되어 가는지를 관찰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거리의 수많은 광고판을 통해 소비와 소유가 행복이라고 강요받고 설득 당한다.

만약 이 대열에 들지 못하면 그 아이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은밀하고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말이다. 카바나 신부는 이를 두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유물에 의해 소유되며, 우리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에 의해 생산된다”고 이야기 한다.

현대의 성탄은 이미 종교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소비문화 안에서 정말 중요한 하나의 이벤트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형 마트나 선물 가게를 들러 쇼핑을 한 후 종교예식에 참례한다.

심한 경우에는 성탄 선물 준비를 위한 쇼핑시간은 있어도 위대한 구세주 탄생의 신비를 묵상하거나 의미를 찾을 시간은 없다. 이즈음 되면 소비를 위한 성탄은 있어도 구원의 신비를 위한 성탄은 없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눈높이를 맞추시는 놀라운 신비이다. 인간의 완전한 구원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시는 엄청난 하느님 사랑의 고백이다. 너무나 사랑하면 그 대상과 같아지고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하느님께서 그 지고한 사랑을 성탄을 통해 직접 보여주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화려한 궁전이나 부유한 집이 아닌 초라한 마구간에서.

성탄절을 보내면서 적어도 이 날이 어떤 의미를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왜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래야만 상품화된 성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물신이 지배하는 병든 세상에서 아기 예수 그리스와 함께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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