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준

상지대 관광학부 교수
산업화, 도시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물질만능 사회 등 현대사회의 산물들은 스트레스, 만성피로, 녹색갈증 등 육체적·정신적 압박감에 의한 문명병 또는 생활습관병이라는 부산물을 낳고 있다. 이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현명한 생존방식을 찾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퍼져가고 있는 ‘웰빙(well-being)’ ‘생태주의’ ‘슬로우시티(Slow city)’ ‘로하스(LOHAS: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웰니스(Wellness)’ 등의 ‘자연’, ‘건강’, ‘느림’에 가치를 두는 대안운동들이 현대적 생존방식의 사회적 트렌드로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여가 분야에서도 역시 건강과 환경의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느림의 미학이 스며 있는 ‘걷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불고 있는 걷는 문화는 과히 열풍이라고 할 만하며 관련 산업의 발전 속도 또한 눈부시다.

자연과 문화의 다양성을 몸으로 느끼며 또한 동반자와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한 일체감을 느끼며 일상에서 쉽게 가질 수 없는 느림의 여유를 자연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프랑스에서 스페인 서북단까지 산티아고의 순례자의 길, 독일의 철학자의 길과 흑림의 다양한 숲길, 일본 전역을 종·횡단하는 장거리 자연보도, 영국 템즈강을 따라 걷는 템즈패스… 이미 외국에서 일반화 되어 있는 도보문화와 걷는 길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지리산 숲길이 처음 조성되면서, 제주도의 올레길, 북한산 둘레길, 변산반도 마실길, 강원도 산소길, 관동별곡800리 등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자연과 문화의 향유를 위한 길은 지역의 자연과 사람 또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돕는 천지(天地)의 자연(自然)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人)의 흔적이 담겨진 실체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느림의 미학이 있는 ‘걷는 길’이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회와의 교류 통로를 의미하며 여유롭게 자연과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생태·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하며, 오랜 세월 동안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 의해 생겨난 곳으로 자연과 삶의 흔적을 천천히 찾아내고 이것을 도시민들이 경험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느끼게 하는 그런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리산 숲길, 제주 올레 길, 북한산 둘레길 등에서 일부 나타나고 있는 자연훼손, 소음, 쓰레기 민원, 사유지 이익과의 충돌 등 느림의 미학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빠르게만 진행되고 있는 단순한 걷는 문화의 확산과 이로부터 나타나는 부정적인 영향들이 정말 안타깝다.

청정 자연환경을 최대 경쟁력으로 가진 강원도에 최근 걷는 길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압박과 유혹이 특히 많은 시점에서 걱정이 또한 앞선다. 아마도 유럽이나 일본에서 자연과 문화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걷는 길 창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랜 역사와 많은 공동체적 고민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고, 오랜 시간을 생각하며 함께 갈 길을 창조했음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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