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한순간에 엄습했다. 아파트 단지 전체가 어둠에 잠기자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혹시 자기 집만 정전인가 해서 아파트 베란다나 현관문 밖으로 나와 살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캄캄해진 게 얼마만인가?

난데없는 정전사태에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둠이 아파트 단지 전체를 뒤덮자 주민들은 시야만을 제약 받은 게 아니었다. 컴퓨터를 할 수 없었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다. 세탁기와 냉장고를 비롯하여 모든 전자제품이 작동을 중단했다. 집안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생활을 가능케 하던 전자제품의 작동 불능은 각 가정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서 이상한 조짐이 감지되었다. 어둠에 갇힌 가족들이 불나방처럼 촛불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각 가정에 비치된 각종 전자제품들이 우리에게 생활의 편리와 윤택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자제품은 인간 상호 간에 관계를 소원하게 하는 건 아닐까? 전자제품은 생활필수품이 되어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전자제품 없이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문명의 이기들로 편리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지 않을까? 어둠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자 서로의 경계가 모호해진 걸까. 촛불에 의지하여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족은 서로를 찾아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을 묶고 있던 전등불과 전자제품에서 해방되었으니 가족들 사이에 끼어들 것이 없다.

어둠침침한 가운데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더듬더듬 서로를 확인했다.

최일걸·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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