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순

서예인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니 모두에게 하얀 눈이 덮여 있다. 주차장 자동차 위에도 단지 내 소나무 위에도. 신묘년 새해엔 강원 서예인들 행복하게 작업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한 때는 모험이었던 일들도 시간이 지나가면 일상이 되어버린다. 30년 전 서예를 시작했을 당시 매일을 흥분 속에서 살았다. 서예를 하며 또다시 시작한 것이 운전이다.

작은 아이들이 커서 유치원을 가고 학교에 갈 때 반복되는 생활에서 시작해 본 것이 운전면허시험이었다.

학원에 등록하고 20일 만에 학과시험을 보니 86점으로 합격을 했다. 운전학원 강사님의 코치대로 언덕 코스는 배워보지도 못하고 시험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주일 만에 면허증은 나왔지만 30여년 가까이 아직 운전을 못한다.

많은 것이 변했다. 몸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희망이라는 무지개는 빛을 잃고 우중충한 회색 속에 묻혀 버렸으며, 내가 가는 길이 진정한 길인지 잘하고 있는지 묻고 싶지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다.

붓과 함께 지낸 삼십여 년, 이렇게 앞길에 대한 이정표가 보이지 않을 때 나와 일생을 같이 할 붓으로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본다. 지난 날 쏟았던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진 오늘을 믿고 신뢰한다. 문인화가, 서예가로 산다는 것이 재주를 뽐내며 사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가진 작은 재주 하나를 아름답고 유용하게 사용하려고 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기온이 1도씩 내려갈 때마다 체감온도가 10도씩 내려가는 이웃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까지 얼릴 추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은 우리들이 모여서 만드는 온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가진 것이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글씨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서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사람은 밥으로만 살 수 없다. 사람의 온기를 느껴야 살 수 있다. 그 온기를 나누는 일에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이 자리에서 애쓰고 있다.

하얗게 막혀버린 작업의 한계를 느낄 때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웃이 생각난다. 화실 3층에서 눈 덮인 재래시장 움직임을 내려다본다.

그러면서 나는 하얀 화선지 위에 문진을 누르고 솔 냄새 나는 먹을 간다. 하얀 화판에 질 좋은 배접지를 이고 황토색 분채를 갈면서 희망을 보려 한다.

신묘년 새해, 어려운 여건 속에 서예를 하시는 모든 분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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