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부

강원도 장애인 재활협회장
새해가 되면 초등학생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올 한해에 성취하고 싶은 포부와 소망을 가지게 된다. 좋은 학교에 진학해야지, 사업을 잘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지, 취미 생활을 좀 더 잘해서 노후를 보람되게 지내야지. 자기 나름대로 각오와 결심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남이 아닌 나를 위하고 내가 잘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남들을 위한 배려와 희생을 통하여 살기 좋은 복지 국가를 만드는데도 우리 모두가 동참하여야 한다.

단단한 돌이나 쇠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깨지고 박살난다. 그러나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도 깨지는 법이 없으니 물은 모든 것에 대하여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 아닐까?

깊은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보라. 그의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스스로 굽히고 적응함으로써 줄기차게 흘러내려서 드디어 바다를 만들 듯이 남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남을 위해 극진하게 대접할 줄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옛 말처럼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할줄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앞을 못 보는 장님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위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어가기에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니십니까?” “당신이 나와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바바하리스는 말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방어를 위하여 열심이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으면서도 그걸 누군가 깨주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자신에겐 한 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하게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망치게 만들고 실패 원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받은 다음에 주려고 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듯이 세상이치는 시험 문제를 푸는 것과 같아서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나보다 남을 높게 여기면 풀리지 않을 일이란 없다. 그렇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거든 남을 먼저 대접하고 섬기다 보면 내 자신을 심하게 탓하고 남을 가볍게 책망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원망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함으로써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남을 위해 배려하고 친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 앞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탈무드에 쓰인 이야기이다.

한밤중에 어떤 단체에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겨서 회원들은 다음날 아침 6시에 긴급회의를 소집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회원은 모두 일곱 사람이었다. 여섯 사람의 회동이었는데 아무도 부르지 않은 한 사람이 멋모르고 온 것이다. 회장은 그 둘 중에 누가 불청객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지 말아야 할 사람은 당장 들어가시오.” 그러나 그들 중에서 가장 유능하고 꼭 필요한 사람이 나가버렸다. 그는 부름을 받지 않은 채 잘못 알고 나온 일곱 번째 사람에게 수치심과 굴욕감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뜻 나가버린 것이다. 이처럼 배려와 희생은 경쟁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경쟁자를 넘어설 수도 있고 경쟁자를 앞지르기도 하며 마침내 경쟁자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하려면 배려와 희생정신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하고 상대가 원한다면 아낌없이 주어야 하며 상대방으로부터 받기 전에 먼저 주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로 희생할 때 즐겁고 보람된 마음이 생성된다. 그럼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됨을 명심하여 남을 위해 많은 공을 안겨줄 수록 돌아오는 가치와 기쁨도 몇 배로 늘어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남을 위하는 마음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실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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