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남

시인
봄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여느 때 2월이면 아직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2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 같은 달이다. 올해는 유난히 2월이 포근하다. 시대가 이렇게 변해간다. 가까운 산에 오르니 나무들의 피부가 한결 부드럽고 윤이 났다.

아마 나무의 내부 혈관에는 땅에서 빨아올리는 수액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것만 같다. 까치가 집을 수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마음이 두근거려진다.

벌써 제주도에는 유채꽃이 9시 뉴스에 등장했다. 여수 오동도의 동백꽃도 TV에 수줍은 얼굴을 드러냈다. 봄소식이 남쪽에서 들려오지만 실은 봄이 남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봄을 맞이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없으면 봄은 멀리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말하자면 봄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봄이 코앞에 와도 감지할 수 없다. 마음이 동면(冬眠) 속에 있는데 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남도의 동백꽃은 정열의 붉은 꽃이다. 그러나 강원도의 동백꽃은 붉은 꽃이 아니라 노란 꽃이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남도의 동백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의 산간에 자생하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을 말한다.

생강나무의 가지를 꺾어서 코에 가까이 대면 특유의 생강냄새가 난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와 생강나무가 다르지 않고 같은 나무를 말한다. 강원도 산촌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려주는 꽃이 동백꽃이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는 등장인물이 나와 마름의 딸 점순이가 등장한다. 나는 소작인의 아들로 우둔하면서 순박한 소년이고 점순이는 조숙한 처녀로 적극적이고 동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은 사춘기 시절을 산촌에서 살며 순박한 애정을 나눈다.

점순이가 어느 날 감자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건네며 먹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감자는 안 먹는다고 거부해버린다. 모처럼 애정표현을 건넸는데 먹혀들지 않았다. 배반당한 점순이가 자기집 닭과 나의 집닭을 싸움시키는데 번번이 나의 닭이 지게 된다.

화가 치민 나는 점순이의 닭을 때려죽이게 된다. 닭을 죽이고 나서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점순이가 화도 났지만 우는 나를 보다 못해 몸을 덮쳐 동백꽃 그늘에 둘은 파묻힌다. 향긋한 냄새에 둘은 땅이 꺼져 내리는 듯 아찔하다. 여기에 동백꽃 냄새와 점순이의 냄새가 합쳐져서 강원도 산촌의 순박한 사랑이 봄을 한껏 발산시킨다.

김유정의 문학이 강원도 산촌의 우직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삶과 그 정서를 표현한 것은 그것이 비단 강원도만의 정서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로 자리매김 했다는 데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 2월이 가면 강원의 산촌마다 노란 동백꽃이 순박했던 점순이처럼 알싸한 향기를 온산에 퍼뜨릴 것이다.

봄을 가장 일찍 알려주는 동백꽃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여겨진다. 먼 산을 바라보니 한결 산 빛이 회색으로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강원도의 노란 동백이 피면 만사를 제치고 고향 산촌을 부담 없이 찾아갈 참이다. 동백꽃 그늘에 눕고 싶은 감정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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