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삼경

문화커뮤니티 금토 편집위원
그게 다 별일 없던 시절의 풍습이라, 재미가 많이 사라졌다지만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만우절에 대한 소소한 추억들이 있다. 이날만큼은 사회구성원 간의 실없는 거짓말도 한바탕 웃음일 뿐 허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구성원들 사이에 팽팽했던 긴장을 풀어주자는 의도대로 체증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곤 하였다. 이런 의욕이 지나쳤던지 ‘스파게티가 열리는 나무’가 있다는 영국 BBC의 방송 등은 지금까지 유명한 해프닝으로 남아 있다. 만우절을 맞아 세상의 인류가 쏟아내는 말을 모으면 얼마나 될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루만 잡아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적당한 측량 기준이 없어 애매하기는 하지만 적게 잡아도 사람들은 제 키 높이 정도는 쌓아 놓지 싶다. 아침 해가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구어놓는 말을 기록해 놓는다면 어떨까. 나무열매처럼 매달리는 말의 입자들…, 말은 기록과 달라 종국에는 잊힐 운명이라지만 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로 가서 어떤 의미가 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유독 말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농담같이 실없는 말, 남에게 상처 주는 말, 두려움을 주는 말을 경계했음은 물론이요, 특히나 남을 속이는 거짓말에 관해서는 범죄 수준으로 대처해 왔다. 이는 고금은 물론 동·서양이 공통된 것으로 그만큼 거짓말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치명적임을 공증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언어가 있었고 문자가 탄생한 이래 말은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어쩌면 유일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말은 지금 우리가 이룩한 모든 문명의 바로미터가 된다. 말하자면 말의 기초 위에 말의 재료로 집을 짓고, 먹고, 입고, 자고 죽는 것과 같다. 게다가 말은 각자 섬 같다는 존재론적 고립을 이어주는 미덕을 갖고 있다. 열길 물속도 그렇지만, 한길 사람속도 말로 소통하다보면 기어이 알게 되는 법이다. 말은 그러니까 사람의 개체성을 이룩하게 하고, 공동의 지향을 맺어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통로이다. 이러한 관습 탓인지 때로 사람들은 그토록 경계하고 의심하여도 매양 그럴듯한 거짓말을 이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요즈음엔 굳이 얼굴을 맞대거나 전화기를 사이에 둔 대화만을 말이라고 하면 시대착오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SNS 라고 해서 트위터, 페이스 북 같은 디지털 통신 환경들이 일상을 증강하는 시대를 맞은 말은 혀와 손가락이 협연하는 이중창으로 발전하고 있다. 말을 만들어내는 제조기술의 비약인 셈이다. 또한 이러한 디지털 언어는 문자로 또박또박 기록되어 삼대 구족까지 숱한 어록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무어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이다. 요즈음 강원도가 정치적 대목을 맞아서인지 경향 각처에서 말이 많다. 모두 강원도에 대한 순정을 주장하고, 순장이라도 할 태세이다. 물론 그 많은 말들 중에 어찌 강원도 사랑과 발전을 위한 충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갑작스레 많아진 말 속에 4년마다 번지는 돌림병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단 깃발을 꽂고 볼일이라는 4년 주기 돌림병은 거개가 속이 빈 거짓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사이도 만우절을 맞아 호사가들의 공연한 거짓말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말의 미덕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말로 해서 입는 상처는 여전히 아픔을 준다. 어떻게 강원도의 해묵은 염원이 각 측에서 말하듯 일괄로 패키지로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인가. 강원도 사랑은 오래된 말처럼 행동으로 보여줄 때 진실해질 것이다. 그 진실이 도민을 하나로 모아줄 것이다. 하나로 모인 진실만이 강원도의 힘이 될 것이다. 그 힘이 있어야 우리는 마침내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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