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니는 교회는 금요일에 가정사역을 한다. 가정사역이란 일종의 구역예배로 모인 사람들이 일주일동안 생긴 일과 앞으로의 일들을 차례차례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기도거리를 찾아 함께 기도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지난주에는 어떤 한 분이 자기가 시민권취득을 위한 인터뷰를 갈 예정인데 원하는 것을 갖게되었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다며 우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미국국기 앞에서 미국인이 되겠다는 선서를 하면서도 마음 곳으로는 끊임없이 모국을 갈망한다는 것이 이중적이지 않느냐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그분은 고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심경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를 보던 사람들 대부분 그것이 무엇이 걱정이냐고, 이 나라에 사는데 필요한 혜택을 누리기위해 시민권은 받는 것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의식만 잊지않으면 되지않겠느냐는 것을 공통되게 이야기하였다.

이곳에서도 유승준의 이야기는 많은 칼럼에서 인용된다. 유승준이 한국에 들어가려했을 때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 당한 것은 세계화에 역행하는 유감이라며 지난 2월에는 LA한인 시민권협회 회원들이 LA총영사관앞에서 데모를 벌이기도 했다. 또 워싱턴에서 이민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전종준씨는 이는 한국정부 언론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반세계화 정서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을 하며 세계의 흐름에 눈을 뜨고 해외동포에 대한 긍정적 국민공감대를 바로 세워야한다고 강조한다.

조국이 유승준을 거부한 것이 마치 자신들이 모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를 택했기 때문에 모국에서 다시는 못 들어오게 거부하는 것과 동일한 것처럼 느끼며 여러 경로를 통해 항의하는 것이 이곳 한인들의 유승준에 대한 생각이다.

정말 그럴까? 법적으로 해외동포가 모국에 돌아왔을 때 얼마나 섭섭한 일을 많이 겪는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승준사건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한국과 미국에서 너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유승준은 이곳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고국에서는 엄청나게 사랑을 받았다. 자신이 병역을 꼭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해 신체검사 받는 장면까지 중계가 되었을 정도로 시선을 받았고, 그리고 그런 겸허한 자세가 해외에서 온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만들어 그 덕에 많은 층의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속에 그의 미국시민권 취득 결정에 분노를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한테 속았다는 감정의 섭섭함과 자기가 이익을 얻고 싶은 데서는 여지없이 양 국적을 이용했다는 배신감에 기인 하는 것이지 이민자들에게 조국을 등진 사람이기때문에 불이익을 주어야한다는 옹졸함에서 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정통때문인지 타 민족에 비해서 이곳에 와서도 우리 민족끼리만 어울리고 우리 것을 유난히 고집하는 폐쇄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국적법에 따르면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는 외국국적을 취득한 때 대한민국 국적을 자동상실한다.

그러나 미국의 법에 의하면 다른 나라 국적을 차지해도 미국국적은 자동말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다른 민족이 사는 미국의 법에 비해보면 우리나라 법은 냉정하고 포용력이 없고 배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의 문제를 떠나서 이곳 한인 미국시민권자들은 냉정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따져봐야한다. 내가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 고국에서 주어지는 의무는 미국인이기때문에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정당화시키고 한국인의 모습으로 한국말을 쓸 줄 알기때문에 생기는 권리는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 아닌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미국시민권 취득선서를 앞에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그분을 위한 기도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미국, 한국 두군데에 다 두고 필요할 때마다 합리화시키는 많은 한인들이 그들의 자녀를 제2의 유승준을 만들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노파심이기 바라는 기도를 더 열심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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