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연수

소설가
바쁜 일상 업무에 쫓겨 동분서주 하다가 문득 고개를 창가로 돌려 봉황산(삼척)을 바라보니 망울져 터져버린 벚꽃과 개나리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봄은 거리를 오가는 젊은 여인들의 화사한 의상과 짧아진 치마폭에서 오는 분위기를 느낀다. 또한 봄은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 오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과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에서 오는 감정과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와 닿게한다.

그런데 자연의 봄은 정확히 시간을 지켜 오지만 인생의 봄은 아주 불규칙한 것 같다.

빨리 올 때도 있고 아주 영원히 안 올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요즘 현대인들은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적당히 아부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부패해서 안락과 쾌락을 한 웅큼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어느 곳을 가 보아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탈법과 야비성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정도를 걷고 정직해서는 인생의 낙오자가 될 지도 모른다. 더러는 새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사기도 치고 부동산 투기도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무엇인가에 씌여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귀신, 권력 귀신, 외제 귀신, 출세 귀신 등. 우리는 지금 쓰레기를 진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자. 알고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보잘 것 없고 쓰잘 데 없는데 우리들의 마음의 눈이 뜨이지 않아 진실을, 순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해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잠깐 있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인생! 밤하늘에 수없이 많이 떠 있는 별들 중에 하나! 수많은 모래알 중의 하나와 같은 우리들! 우린 잠시 머무르고 갈 이 세상을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집착은 곧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어느 철인이 얘기한 것처럼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덤덤히 수용하자. 고통과 절망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올 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절망하자. 그리고 철저히 패배하자. 그리고 그 깊은 절망의 반작용을 내부로부터 일으키자. 절망 위에 선 희망이야말로 진실로 참다운 삶이다. 사람답게 사는 삶과 인간적 참됨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쟁취되는 것이다.

더욱더 처절한 자기 고뇌를 거쳐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가자.

우리들은 흔히 자기의 고통을 확대해서 보고, 타인의 고통을 축소해 보는 오류를 범한다. 호수에서 평화롭게 놀기 위해 물 속에 잠겨 헤엄을 치는 백조의 두 발갈퀴는 얼마나 힘든 노동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눈에 투영되어 들어오지 않는 많은 평화에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자.

20세기의 최대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좋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개나리와 유채꽃이 만발한 이 4월에 한번쯤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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