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우

수필가·시조시인(전 춘천 우석초교장)
누구나 길을 가게 된다. 길을 가는 일은 삶의 수단이며 사는 것 자체이기도하다. 길을 가기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걷기위해서 길을 간다. 그런 세상이 되었다. 길에는 단순히 이동을 하는 통로도 있지만 변화해가는 궤적도 있다. 어느 것이나 길에는 좋은 길이 있고 반대로 나쁜 길도 있을 수 있다.

요즈음 곳곳에서는 길을 만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걷는길 만들기가 유행을 타고 있다. 제주에서 올레 길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맞이하더니 강릉에서는 솔향길을 비롯하여 10여개의 걷는길로 옛길을 손질하거나 새 길을 냈다고 한다. 모두 풍치를 즐기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 건강에 도움을 주는 좋은 길들이다. 의도적으로 좋은 길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걷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일상의 길이 좋은 길이어야 한다. 길을 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일상으로 가는 길에는 가정이나 직장의 건물 안의 통로에서부터 이웃 간을 오가는 골목길, 차도와 구별되어 걸을 수 있는 인도, 건강을 위해 일부러 찾아가는 숲길, 바닷길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모두 가야 하는 길이라면 좋은 길이 좋다.

좋은 길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바른 길이어야 한다. 길이 날 곳에 나 있는 길이 바른 길이다. 인도 중에 더러는 길이 나지 말아야 할 곳에 길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있다. 남의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여서 길을 가는 사람이 민망한 길이라든가 막다른 곳에 다다라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난 길이든가 남의 묘지를 밟고 넘게 난 길도 있다. 옳지 못한 곳에 난 길을 걸으면서도 여기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난감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옛 어른들께서 말씀을 하신 모양이다.

둘째로 길은 안전해야 한다. 가끔 교통사고 소식을 듣게 된다. 고속 철도에서 열차가 궤도를 벗어났다느니 어느 내리막길에서 관광버스가 어떻게 됐다느니 하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떤 사고는 철길을 정비하면서 작은 나사못 하나를 조이지 않아서 일어난 사고란다. 안전은 큰 것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다. 수없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에서 블록이 한 장 다른 것보다 돌출했다거나 고정되지 못하고 움직이기만 해도 골절을 당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건널목에서 인도로 올라서는 턱이 조금만 다른 곳보다 높아도 넘어져서 찰과상을 입거나 뼈가 부러질 수 있다. 다니다보면 안전하지 못한 길이 많이 눈에 띈다. 이런 곳을 찾아 고치거나 고쳐 달라고 관계기관에 건의하는 시민단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는 깨끗한 길이어야 한다. 길에서 악취가 나거나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길은 좋은 길일 수가 없다. 깨끗한 길은 길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가질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서로 깨끗이 하려는 노력도 해야 하고 서로 깨우쳐주는 일도 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세 가지 기본이 갖추어진 길에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거나 숲이 우거져서 숲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면 더욱 좋은 길이 될 것이다. 그런 길을 찾아내는 일들을 오늘 날 여러 지방 자치단체들이 하고 있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숲 속에 길을 만들고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일은 독일 뵈리스호펜 마을의 세바스찬 크나이프 신부가 시작하여 일본 온천지역에서 따라하고 다시 여기에 눈을 뜨게 된 많은 나라들로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는 시군마다 앞 다투어 숲길, 물길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고장마다 이야기가 있는 길들을 꾸미기에 힘쓰고 있다. 잘 만 이용하면 좋은 일이겠지만 자연을 크게 훼손해 가면서 지나치게 사람의 손길을 타서 만드는 길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면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기왕에 만들어지는 걷는길이라면 이 길도 좋은 길이면 좋겠다. 좋은 길은 역시 좋은 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하겠다. 길을 가기위한 길이라면 더러 불가피하게 조건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걷기를 위해서 만들어지는 길이라면 더욱 좋은 길로 만들어야 한다.

여러 곳에서 길을 만든다기에 많은 돈과 공을 들여서 혹여 아무도 찾지 않는 쓸모없는 길이나 되지 않을까하는 공연한 염려가 되어서 한마디 해둔다. 좋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인생길도 모두 좋은 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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